• 제 17대 대통령선거 후보등록일을 딱 열흘 남겨놓았지만, 대선판도는 일년 전 상황과 대동소이하다. 여권주자들의 지지율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의 독주체제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남은 기간 동안 여권후보가 지지율을 '얼마나 높이느냐'는 것보다 이 후보가 '얼마나 갉아먹히느냐'는 것이 관건이 되고 있다. 압도적 1위 후보의 대세론을 유지해야하는 한나라당으로서는 여전히 '이명박 대 이명박'의 싸움을 계속해야하는 셈이다.

    1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만난 한나라당 한 의원은 '남은 기간 최대의 적은 누구냐'는 물음에 거리낌없이 "이명박"이라고 답했다. BBK사건 핵심인물인 김경준의 국내송환과 검찰조사에 강한 자신감을 나타내고 있지만, 검찰조사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를 던지지 못하는 표정이다. 이회창씨 탈당, 박근혜 전 대표의 침묵으로 잠시 위기를 맞았지만 이 후보의 화합수습책 발표와 박 전 대표의 지지로 이어지면서 당내 문제에 관한 한 정면돌파했다는 자평이다. 잠시 지지율 상승세를 타던 이씨의 무소속 출마 역시 '반짝쇼'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깔려있다.

    이 후보측은 임박해진 김경준 국내송환에 대책 마련에 역점을 두고 있다. 한나라당은 '김경준의 입'에 국내 여론이 휘둘리지 않을 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반박논리를 전파하고, '제 2의 김대업'을 상기시켜 정권차원의 공세를 차단했다. 최근에는 검찰의 공정 수사를 강력히 압박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김경준의 주장이 검찰의 미심쩍은 발표를 타고 나온다면 또 '검풍(檢風)'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한 것이다.

    안상수 원내대표, 이방호 사무총장 등 당 지도부가 나서 검찰이 '공작수사'를 할 경우 '민란'과 같은 국민적 저항이 있을 것이란 경고를 한 데 이어, 한나라당은 검찰의 수사진행에 따라 '모든' 대응방식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의도 당사에는 클린정치위원회 내 '김경준 특별상황실'을 가동 중이다. 고승덕 변호사가 상주하면서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하도록 준비태세를 갖췄으며, 언론팀 등 타 부서에서 지원인력까지 가담한 상태다.

    홍준표 클린정치위원장은 국회 브리핑을 갖고 "공직선거법 상 22일 간의 선거운동 기간에는 후보에 대한 소환, 압수수색, 영장 발부 등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후보와 관련된 것은 고소된 것도 없으며, 이 후보는 이 사건의 피해자도 아니고 제3자인 참고인일 뿐이다. 선거운동 중 수사의 본질도 아닌 부분을 (언론에) 흘리는 것은 검찰 본연의 자세가 아니다"고 검찰에 압박메시지를 전했다. 정형근 최고위원이 강원 국민성공대장정에서 "여권 중진이 김경준을 구하기 위해 LA에 TF팀을 구성하고 진두지휘하고 있다고 듣고 있다. (여권) 유력 측근들이 팔을 걷어 붙이고 있다"고 주장한 것은 여차하면 '정권차원의 정치공세'로 돌려세워 역공을 펼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클린정치위원회는 전날에 이어 '김경준의 황당한 허위주장과 사건의 진실'이라는 보고서 2탄을 공개했다. 반박자료를 미리 발표함으로써 예상되는 김경준의 주장이 여론에 파고들 틈을 주지않겠다는 전략이다. 클린정치위원회는 '금감원에 확인서를 제출한 사실이 없다'는 등의 김경준 주장을 "국회 정무위 공식답변에서 금감원은 김경준 본인에게 내용을 확인시키고 받았다고 확인했다"며 반박했다. 또 김경준이 가공인물 'Christopher Kim' 이라는 명의로 신청한 여권신청서 등을 증거로 제시했다.

    오승재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국제위조전문가 김경준의 '이면계약서' 주장은 5년 전 김대업의 '조작 녹음테이프'사건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그 예고편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경준 이면계약서 시나리오'라며 △ 1단계 김경준이 위조한 이면계약서를 제출하면서 국민의혹을 고조시키고 △ 2단계로 당국은 그 진위를 감정한다고 시간을 끄는 동안 김경준 배후세력이 덮어씌우기 정치공작에 총력을 기울이며 △ 3단계 당국은 감정에 신중을 기한다는 이유로 재감정을 의뢰하면서 다시 시간을 끄는 동안 김경준은 다른 문서가 있다고 발표하고 △  4단계 마지막으로 당국은 역시 진위 판독불능이라며 책임에서 빠져나온 뒤, 대선 후 김경준만 처벌된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후보는 일관되게 BBK와는 무관함을 강조해왔다. 그는 이날 강원대회에 앞서 김경준의 국내송환에 대한 정치권 공세를 경계하면서, 동시에 검찰의 공정수사를 촉구하는 입장을 취했다. 공정수사가 이뤄질 경우 자신감도 나타냈다. "대한민국 법은 살아있고 법을 담당하는 정부조직에서 공정하게 잘 할 것이라고 신뢰한다. 법은 법에 맡겨야 한다. 과거 2002년 김대업식 발상은 버려야 한다. 시대가 바뀌었다. 국민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후보는 또 "그 문제는 정치적 문제가 아니고 법의 문제"라며 "정치인이 정치적으로 이용해서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