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남들 6개월에 할 거 두 달에 하기 때문에 무지 바빠"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통합신당) 대통령 후보의 대변인인 김현미 의원이 지난달 22일 5인 회동(정동영·손학규·이해찬·김근태·오충일) 전 기자들과의 대화 도중 한 말이다. 자신들이 만든 정당(열린우리당)을 시간에 쫓겨 스스로 깨고 3개월짜리 새 정당(통합신당)을 만들어 대선 후보까지 선출하려다 보니 타 정당 보다 바쁜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이제 대선이 35일 남았는데 정 후보는 아직도 할 일이 태산이란 것이다. 19일 민주당과 합당하고 후보 등록 전 이인제 후보와 단일화를 해 '통합민주당'(가칭)의 대통령 후보로 나서겠다고 지난 12일 국민들 앞에 선언했는데 사흘이 지난 14일 당내에서는 정 후보가 사인한 합의문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합당 상대인 민주당 역시 "(12일 양당 후보와 대표가 서명한) 합의문에 변경을 시도한다면 일체 협상에 응하지 않겠다"고 한다. 정 후보가 사흘 전 한 약속조차 지켜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는 이미 12일 처음 한 약속은 다음날인 13일 뒤집었다. 우여곡절 끝에 그가 민주당과 합당 뒤 새 정당의 대통령 후보가 된다 해도 정 후보는 다시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와의 2차 단일화 혹은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 정 후보 측 바람대로 라면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까지 끌어안아야 한다. 정 후보는 '그래야 해볼 만 하다'며 범여권 통합을 주장한다. 

    이런 정 후보 측의 계획이 남은 시간 안에 원만히 해결될 지도 의문이지만 무엇보다 차이가 있는 여러 정당의 노선과 이념을 어떻게 하나로 묶어 국민이 안심하고 믿을 수 있는 향후 5년간의 국정운영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지가 더 궁금하다. 정 후보가 유권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있다면 공식선거운동일인 27일 이전에는 이 같은 작업을 마무리 해야 한다.

    2주도 채 남지 않았다. 문제는 이 기간 동안 이 모든 작업을 이뤄낸 다 해도 정 후보를 신뢰하기 힘들다는 데 있다. 김 의원 말처럼 정 후보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1년 이상 걸려 올라온 길을 두 달 만에 도착했다. 같은 거리를 남들 보다 빨리 왔다고 욕할 것은 아니다. 정도로 걸어왔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정 후보는 온갖 반칙을 동원해 통합신당의 대선후보 자리까지 왔다.

    경선 과정에선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만큼 숱한 문제가 발생했고 경쟁자인 손학규 이해찬 후보가 '이대로 갈 수 없다'며 경선을 중단했지만 정 후보는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정도를 빗겨갔고 원칙은 저버렸다. 이날도 정 후보는 민주당과의 합당문제와 관련, 전날 발표한 재협상 주장을 다시 뒤집었다. 김현미 대변인은 이날 비공개로 진행된 최고위원회-상임고문단-선거대책위원회 연석회의 결과 브리핑에서 "4자 회동의 뜻을 존중한다는 대원칙 하에 통합조건 재협상에 임하기로 했다"고 밝혔는데 전날 오 대표의 재협상 요구 발표와는 다른 결과다.

    정 후보는 앞으로 주어진 2주의 시간 역시 반칙과 편법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종착지에 가기 힘든 상황이다. 전날 약속도 뒤집는 정 후보가 국민들에게 '5년 동안 날 믿고 따라와 달라'고 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