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24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대선 출마설이 꼬리를 물고 있다. 어제는 그의 지지자들이 대통령 후보 추대 결의대회까지 열었다. 그의 출마설은 정치권에서는 툭하면 등장하는 단골 소재이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단순한 소문으로 치부할 수 없는 정황이 있다. 그는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선출된 뒤 이 후보의 면담 요청을 ‘급체’를 이유로 거절했고, 최근에는 선대위 상임고문직도 고사했다. 이 전 총재의 측근은 “좌파정권을 교체해야 하는데, 그 방법이 한나라당 후보냐 다른 길이냐 고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전 총재 출마설이 가라앉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본인이 분명한 의사 표시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기자들의 ‘이번 대선에 직접 출마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정권 교체를 위해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아리송하게 답변했다.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은 것이다. 대선을 불과 50여 일 남겨놓은 지금도 범여권의 후보 단일화 모색으로 대선 구도가 불확실한데, 이 전 총재마저 여기에 동참하겠다는 것인가.
     
    무엇보다 이 전 총재가 또다시 출마한다면 이는 정치도의에 어긋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대선에 출마할 수 있다. 대선 3수 금지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프랑스의 미테랑·시라크 전 대통령은 세 번 만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네 번의 도전 끝에 당선됐다. 그렇지만 이 전 총재는 한나라당의 총재였고 1997년과 2002년 대선 후보였다. 지금도 한나라당 당적을 갖고 있다. 한나라당이 ‘차떼기당’의 오명을 뒤집어쓴 것도 이 전 총재가 대선 후보였을 때였다. 만약 그가 이명박 후보로서는 정권교체를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면 진작 당내 경선에 참여해 심판을 받아야 했다. 이제 와서 한나라당 후보의 낙마를 기다려 한나라당 후보가 되겠다거나 무소속 후보로 출마하겠다는 것은 떳떳하지 못하다.

    이 전 총재가 이 파문을 빨리 진정시켜야 한다. 그게 정계 원로로서의 도리이며, 두 번의 대선에서 표를 준 국민에 대한 책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