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9일자 오피니언면에 빅뉴스 변희재 대표가 쓴 <‘포스트 386세대’가 움직인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심형래 감독의 영화 〈디워〉에 열광하는 관객들을 향해 386세대 문화평론가 진중권씨는 ‘애국주의적 광기’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논란이 점차 거세지자 그는 “못 만든 영화는 보지 않아야 다음부터 잘 만들 것 아니냐”며, 사실상 스크린쿼터 폐지론을 대변하게 되었다.

    이런 진중권씨는 지난해 영화인들과 함께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토론회에서 사회를 봐준 인물이다. 영화를 애국심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고 호통을 치면서도 그 영화적 애국심의 산물인 스크린쿼터에 대해서는 사수파들과 보조를 맞추는 모순적 상황, 이 지점에서 386세대의 한계가 단적으로 드러난다.

    386세대의 담론은 크게 민족주의와 신좌파로 구성된다. 상반돼 보이는 두 가지 담론은 모두 서구에서 직수입하여, 서구 의존적 사고에 젖어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민족주의자들은 미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영향력을 너무 과대평가하기 때문에 개방을 막아야 민족을 지킬 수 있다고 판단한다. 반면 신좌파들은 대한민국 발전의 역사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며, 서구의 개인주의를 절대불변의 가치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386세대의 더 중요한 공통점은 오히려 그들의 패거리 문화에 있다. 이는 서구에서 수입한 이론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출세와 권력의 법칙이다. 생각과 노선이 조금 다르더라도, 운동권 시절부터 이어온 끈끈한 학맥과 지연으로 얽히면서, 386세대는 거대한 지배그룹을 형성·유지해왔다. 논리적으로만 보자면 무조건 스크린쿼터 폐지에 앞장서야 할 인물이 스크린쿼터 사수편에 서있는 현상도 논리보다는 패거리를 중시하는 386세대의 산물이다. 또한 실력이 안 되는 자들, 소비자로부터 버림받은 자들이 퇴출당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1970년대 이후 태생, 이른바 ‘포스트386세대’는 문화의식에서부터 386세대와 판이하다. 이들은 90년대부터 한국 대중문화와 인터넷의 성장기를 함께했다. 안재욱이 중국을, 배용준이 일본을, 박찬호가 미국을 휩쓰는 것을 인터넷으로 생생히 확인하면서 세계 속에서의 대한민국의 위상을 다르게 인식했다. 이들에게 미국이나 유럽은 접속 한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까운 곳이다. 그리고 대중문화와 인터넷에서는 대한민국이 서구에 비해 별로 떨어질 게 없다고 판단한다. 386세대가 반미의 깃발을 들면서도 아카데미영화제 등 미국문화의 권위에 머리를 숙였던 반면, 이들은 아무리 미국에서 인정받은 작품이라도 재미없으면 보지 않는다.

    공동체에 대한 관점도 386세대와는 전혀 다르다. 이들은 권력쟁취를 위한 조직을 짜는 데에 익숙하지 않다. 스포츠 응원이나 〈디워〉현상 같이 사안이 있을 때마다 인터넷카페를 만들어 자신들의 의견을 결집시킨 뒤, 일이 끝나면 바로 해산한다. 학생회장 경력으로 수많은 정치단체를 만들어 패거리권력을 유지하는 386세대처럼 리더나 보스가 존재할 수 없다.

    386세대의 담론과 패거리문화로는 포스트386세대의 의식이나 이들이 만들어내는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386세대의 눈에 〈겨울연가〉의 일본열풍, 〈디워〉의 미국상륙은 초국적 자본의 음모나 애국적 광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제껏 포스트386세대의 의사표현 수단은 문화상품에 대한 소비자로서의 개별적 권리행사뿐이었다. 그러나 포스트386세대도 이미 30대를 훌쩍 넘어섰다. 이들은 자신들의 의식이 확립된 90년대에 대한 분석작업을 통해 정체성을 보다 정밀히 가다듬고 있다. 이 과정을 통해, 자기들이 즐기는 문화와 인터넷 발전은 물론 개인의 취업과 창업 등 일상 모두가 정치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소비자로서만이 아닌 민주시민으로서의 역할도 점차 커질 수밖에 없다.

    조직도, 깃발도, 리더도 없는 포스트386세대의 민주적 절차와 시장에 의한 세대교체 혁명이 이뤄질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