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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전군표 국세청장이 지난 12일 정상곤 전 부산국세청장 관련 자료를 수집하러 국세청에 찾아온 검찰 수사팀에게 “(정 전 청장이 부산 건설업자 김상진씨로부터 받은) 뇌물 1억원의 용처를 더는 수사하지 말아 달라”고 요구한 의혹이 있다고 동아일보가 19일 보도했다. 국세청은 “조직 사기를 생각해 수사가 빨리 종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얘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검찰은 “(국세청장이) 용처 수사와 관련해 가볍게 관심을 표명하면서 물어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정 전 청장은 김상진씨에게서 돈 받은 사실을 선선히 시인하고 지난달 9일 구속됐다. 그 돈은 당연히 정 전 청장 수중으로 들어갔으려니 했다. 그런데 전군표 국세청장이 이미 일주일 전에 1억원의 행방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 자체가 뜻밖이다.
정 전 청장은 면회 간 주변사람들에게 “억울하다. 그 1억원은 내 돈이 아니다. 내가 입을 열면 여럿 다친다”고 말했다고 한다. 돈 받은 사실을 깨끗하게 인정한 사람이 돈이 어디로 갔는지에 대해선 구속 40일이 넘도록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는 것도 희한한 일이다. 정 전 청장은 동료에게 ‘배달 사고’라는 말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1억원은 정 전 청장이 아니라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갈 돈이었는데 어떤 사정으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김상진씨와 정 전 청장을 연결시켜 준 정윤재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18일 검찰 조사를 받고 나서 “김씨가 어떤 분을 보호하기 위해 (나를) 음해하는지 모르지만 참담하다”고 했다. 김상진씨는 지난 6일 방송 인터뷰에서 2003년 정 전 비서관에게 준 2000만원을 언급하면서 “그보다 더한 돈을 제3자에게 준 적이 있어도 (그 3자가) 먹고 입 닦아도 두 말 안 했다”고 했다. 정윤재씨의 ‘어떤 분’이나 김상진씨의 ‘제3자’라는 표현은 누군가 드러나지 않고 있는 어떤 인물을 두고 한 말일 수 있다.
이렇게 사건 관련자들이 뭔가를 알고는 있지만 말은 못하겠다는 식으로 나오면서 의혹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도대체 누구이길래 이렇게들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검찰만이 전모를 밝혀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