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15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심상복 국제담당 에디터가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평등하다고 믿고 있다.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인간이 평등하다’는 말은 사실 ‘평등해야 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평등하지 않기 때문에 평등해야 한다고 다들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닌다.

    주위를 둘러보라. 얼마나 불평등하고 불공평한 것투성이인지. 아파서 병원에 가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냥 갔을 때와 그 병원의 누구 소개를 받아 갔을 때의 차이 말이다. 민원이 있어 경찰서나 시청 같은 관공서를 방문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같은 시민이라지만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그들의 응대 자세는 달라진다. 사람마다 몸값이 다르다는 사실은 생명보험에 들어보면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사고가 났을 때 받는 보험금이 천차만별이다.

    평등은 적어도 법 앞에서는 통하는 단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돈으로 죗값을 치르는 일은 1등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이 몇 년 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마운틴 휘트니 고등학교를 방문, 사회 진출을 앞둔 학생들에게 10가지 조언을 했다. 그 첫째가 ‘인생이란 본래 공평하지 못하다. 그런 현실에 불평할 생각 말고 그냥 받아들여라’였다.

    나도 때로는 불공평한 대우를 받지만 그런 문제를 스스로 만들기도 한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태풍으로 미국과 스리랑카와 짐바브웨에서 각각 100명씩 숨졌다고 하자. 같은 인명 피해가 났지만 신문에서 차지하는 기사 크기는 큰 차이가 난다. 그래서 아프리카인 몇백 명이 숨져도 미국인 몇 명이 죽었을 때보다 기사가 작은 경우가 흔하다. 여러 요소를 감안해 기사 가치를 정한다는 논리이지만 어쨌든 신문은 이렇게 사람을 불평등하게 대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불공평은 이어진다. 같은 한국 사람을 놓고도 전혀 다른 잣대가 적용된다. 7월 19일 아프가니스탄에서 분당 샘물교회 단기봉사단원 23명이 탈레반 무장세력에 납치됐다. 이 사건은 내가 아는 한 한국 언론에서 단일 사건으론 가장 크게 다뤄졌다. 중앙일보만 해도 발생 직후 15일 연속 1면 톱을 차지했으니까. 그 뒤에도 여러 번 더 헤드라인으로 복귀했다. 약 3000명의 목숨을 앗아간 2001년 뉴욕의 9·11 테러나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 그리고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도 이렇게 오래 1면 톱에서 버티지는 못했다.

    42일간에 걸친 탈레반 피랍 사태는 이제 완전히 끝났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발생한 다른 인질 사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정부와 언론, 국민의 철저한 무관심 속에서. 탈레반 사태가 종료되면 이 사건도 주목 받을 것 같았지만 여전히 신문의 한 귀퉁이도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올 5월 15일 아프리카 소말리아 인근 해상에서 한국인 소유의 어선 두 척이 무장해적들에게 납치됐다. 모두 24명이 붙잡혔는데 그중 4명이 한국인이다. 선장 한석호(40)씨를 비롯한 이송렬(47)·조문갑(54)·양칠태(55)씨다. 나머지 선원은 중국인 10명에 인도네시아인 4명, 베트남과 인도인 각 3명이다. 피랍된 지 오늘로 꼭 넉 달이지만 아직도 풀려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먹고 살기 위해 아프리카까지 갔다가 이런 고초를 겪고 있다. 국가적으로는 외화벌이에 기여하는 경제행위였다. 정부가 가지 말라는 나라에 선교를 하러 간 사람들과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그런데도 탈레반 피랍자들과 비교할 때 정부로부터 받는 관심은 하늘과 땅 차이다. 국가는 자국민의 안전과 복리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그래서 온갖 비난에도 불구하고 탈레반 테러분자들과 마주 앉아 석방협상을 벌였다.

    해적들에게 피랍된 4명의 선원과 그 가족들에게 국가는 어떤 존재로 비칠까. 어떤 인질을 구하기 위해선 정보기관장이 돈 보따리를 싸들고 나섰다는데, 우린 왜 이렇게 무관심 속에 방치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아무리 그렇다 쳐도 이건 너무 심하다. 정부는 이제부터라도 이들의 석방에 적극 나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