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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6일자 오피니언면에 김기홍 부산대 경제학과 교수가 쓴 시론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너무 그렇게 비딱하게 보지 말자.”
정윤재 전 청와대 비서관이 연루된 소위 ‘세무 게이트’ 사건이 터졌을 때 어느 지인이 정색하며 말했다. 그의 요지인즉, 정치인은 사람 만나는 것이 직업인데 한두 번 만난 사람이 사기꾼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으며, 아는 사람(김상진 씨)에게 아는 사람(전 부산지방국세청장) 한번 소개해 준 것이 무에 그리 흠잡을 일이냐는 것이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김상진씨의 사업 이력을 알고 그가 관련된 ‘돈이 말하기 시작하니’ 모든 것이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에게 건넨 돈은 꼬리의 꼬리이고 문제의 시작일 뿐이었다. 328억 원이 훨씬 넘는 비자금은 어떻게 조성했고 그것을 어디에 사용했는지, 부실한 사업이력을 가지고 국민은행, 부산은행, 신용보증기금에서 어떻게 대출을 받았는지, 세무조사를 무마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사업을 하기 위해 개발정보를 어떻게 빼내었는지, 지금 제대로 밝혀진 것이 하나도 없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이 부실한 사업가가 좁은 부산 바닥을 활개치도록 누가 그를 두둔하고 비호했는가 하는 점이다. 정말 정 전 비서관은 ‘깜도 안 되는 의혹’의 희생물인가?
높은 사람들이 하는 것 일반 시민들은 몰라도 좋다고? 좋다. 어느 시민의 말대로 “너희들 그렇게 해 먹고 싶다면 ‘마 다 해 묵어라’”. 하지만, 재개발사업과 그것을 주관하는 시행사의 부정(不正) 문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민초들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김상진씨의 ‘(주)일건’이라는 시행사. 이 시행사가 연산동 일대(서울의 용산 격)의 재개발사업을 진행하면서 최소한 100억원 이상을 빼돌렸다. 지금 드러난 것만 이 정도다. 얼마나 더 나올지 모르나 이 모든 돈은 나중에 여기에 지어질 아파트에 입주할 입주자의 몫, 다시 말해 고스란히 부산 시민의 몫이다. 그것도 10년 이상의 논의 끝에 겨우 시작하려는 부산의 재개발사업을 상대로 한 것이다. 차라리 벼룩의 간을 빼먹지. 골목과 골목, 2차선과 1차선, 일방통행으로 얼룩진 부산을 겨우 제대로 된 도시답게 바꾸려는 재개발사업을 대상으로 사기를 치고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빼먹으려 하는가.
이뿐 아니다. 김상진씨와 그의 형이 시행사의 이름을 이리저리 바꾸면서 하는 사업이 봉이 김선달 뺨치듯 한다. 토지의 용도변경 정보를 빼돌려 수영구 민락동(서울의 반포동 격)에 초고층 콘도를 건설하려 하는가 하면, 해운대구 재송동(서울의 신사동 격)에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를 건설하려 한다. 하나같이 부산의 요지들이다. 자본금 3억~4억원의 시행사가 무슨 돈으로 무슨 정보로 누구 비호로 이런 사업을 진행하는지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모든 사람들이 함께 바다를 즐겨야 할 자리(민락동)에 더 이상 초고층의 콘도가 들어서서는 안 된다. 공급과잉으로 초토화된 부산 주택시장에 초호화 주상복합은 또 무슨 말인가? 그들의 눈에는 빈사상태의 부산 주택시장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부산은 이미 이런 ‘사기성 어린’ 시행사의 횡포에 멍이 들 대로 들었다. 1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시행사(시공사도 포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부산의 남구 용호동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과장광고와 지키지 않은 약속에 계약자들이 반기를 든 것이다. 서울의 강남 격인 수영만, 서울의 신촌 격인 동래에도 마찬가지다. ‘우째 이런 일이’라고 말하지 말라. 이게 부산이 처한 현실이다.
정권의 도덕성? 관심 없다. 비자금의 사용 용도? 조금 관심 있다. 부산의 발전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돈을 누가 가져갔는지 밝혀져야 하기 때문이다. 부산의 재개발과 주택시장? 너무너무 관심 있다. 두 눈 바로 뜬 사람이라면 여기 부산에 와서 과거 대한민국 제 2 의 도시가 어떻게 스러지고 있는지 똑똑히 보라. 그런 도시에서 한 줌도 안 되는 시행사가 권력의 비호를 업고 호가호위(狐假虎威)하며 시민의 등을 치려 한 것, 그것이 이번 ‘소설 같은’ 이야기의 본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