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3일자 오피니언면에 김인규 한림대 경제학과 교수가 쓴 시론 <'네거티브, 그 치명적 유혹'>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사랑의 유효기간은 얼마일까? 사랑을 호르몬의 작용으로 보는 과학자들은 길어야 3년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험으로 이것이 맞다는 것을 안다.

    경제학자들은 사랑의 유효기간을 ‘한계효용체감(限界效用遞減)의 법칙’으로 설명한다. 무더운 여름, 시원한 청량음료 첫 한 모금이 주는 만족감은 매우 크다. 하지만 한 모금에서 두 모금, 두 모금에서 세 모금으로 넘어가면서 추가적인 만족감, 즉 한계효용은 차츰 감소한다. 사랑의 감정 역시 이 법칙을 따른다.

    이에 비해 첫사랑의 추억은 아련하고 오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첫사랑도 다시 만남을 거듭하면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작동해 ‘환상’이 깨진다.

    2002년 대선 판도를 뒤흔들었던 ‘김대업 망령’이 네거티브(음해·비방) 캠페인의 이름으로 또 한 번 올 대선에 파란을 예고하고 있다. 범여권에게는 첫사랑의 아련함으로, 한나라당에게는 대선 패배의 악몽으로, 국민에게는 사기당했던 씁쓸한 추억으로.

    왜 그때 많은 국민들이 김대업의 ‘병풍(兵風)’ 사기에 어이없이 넘어갔던 걸까? 우선 ‘이회창 대세론’ 때문에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 문제가 이슈화되지 못했다. 그리고 월드컵 열기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두 아들 구속 등의 굵직한 사건에 묻혀 다시 이슈화 시기가 늦춰졌다. 이어서 검찰이 병풍 관련 고소 사건 처리를 대선까지 질질 끌면서 국민은 ‘병풍’의 사기성을 제대로 깨달을 수 없었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작동할 여건과 시간이 불충분해 네거티브의 ‘환상’이 깨지지 않았던 것이다.

    오피니언 리더들은 국민이 대선후보들에게 바라는 것은 건전한 정책 대결이지 결코 네거티브 캠페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종주국이랄 수 있는 미국의 역대 대선을 분석한 조지아주 케네소 주립대학 스윈트(Swint) 교수는 ‘네거티브, 그 치명적 유혹’이라는 저서에서 “국민은 네거티브 캠페인을 사랑한다”고 결론지었다.

    왜 그럴까? 국민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어느 유권자가 각 후보의 정책을 힘들게 비교 분석해 더 나은 후보에게 투표하더라도 그의 한 표가 우리나라 전체 유권자 3500여만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제로다. 다시 말해, 그의 노력은 헛수고에 가깝다. 따라서 합리적 유권자는 노력이 필요 없는 네거티브에 귀를 기울인다.

    사정이 이러하니 대선 후보들은 네거티브의 치명적 유혹에 빠져든다. 이런 현실에서 그나마 네거티브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은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에 호소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네거티브를 일찍부터 반복해 국민이 거기에 무뎌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한나라당 경선에서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이 후보는 운이 좋았다. 그에 관한 각종 의혹들이 미디어의 대대적 주목을 받을 상황에서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인질사태, 남북정상회담 개최 등 굵직한 현안들이 터져 나와 여론을 분산시켜 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후보의 행운은 여기까지다. 그의 차명재산 의혹과 BBK 사건 등은 이슈화 시기만 늦춰졌을 뿐 아직 그 실체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채 여전히 검찰의 손에 있다. 2002년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네거티브 주장들은 이슈화 시기가 늦춰질수록 그 폭발성이 더욱 증대된다.

    범여권 후보들에게 네거티브는 ‘첫사랑의 아련함’이다. 이는 본선에서 펼쳐질 범여권의 네거티브 공세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악랄하리라는 것을 예고한다. 이 후보가 ‘2002년의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지금 그가 해야 할 것은 분명하다. 그동안 드러난 의혹들 중 자신이 생각하기에 조금이라도 고해성사(告解聖事)를 해야 할 것이 있다면 하루빨리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의혹들과 네거티브 가능성이 있는 새로운 소재에 대해서는 이 후보가 범여권보다 먼저 반복적으로 이슈화해야 한다. 그래야 네거티브의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작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