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 28일부터 30일까지 평양에서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고 발표되었다. 노무현 정권이 대선을 앞두고 남북관계 카드를 사용하리라는 것은 오래 전부터 예상되어 왔던 일이다. 여러 정황을 고려해 볼 때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대선을 불과 4개월 앞둔 시점에서 열린다는 점에서 남북의 좌파정권이 합작으로 평화 무드를 조성함으로써 불리한 대선정국을 전환시키려는 정치적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가 불과 6개월 정도 밖에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고 그것도 북한 핵문제가 여전히 교착상태에 빠져있는 상황에서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가 나올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이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한 가장 중요한 목적은 대선정국을 유리하게 전환함으로써 남한 좌파정권의 수명을 연장하려는데 있는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은 당장 노무현 정권에 대한 지지율 상승으로 연결되어 지지부진한 여권의 대통합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북풍(北風)과 같은 외부 변수에 대한 내성(耐性)이 많이 생겼기 때문에 그 효과가 그리 클 것으로 보지 않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체제와 같은 특정 의제에 대한 선언적 결과라도 나오는 경우 대선에 대한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대선은 이슈 경쟁에서 통일 대 반(反)통일, 전쟁 대 평화와 같이 여권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이 점이 바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노무현 정권의 말기임에도 불구하고 남북정상회담에 응한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결국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이를 정권 재창출에 이용하려는 노 대통령과 한반도 평화 분위기를 이용하여 북미관계의 진전과 같은 실리(實利)를 얻으려는 김 위원장간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이다.

    이에 따라 대선에서는 남북문제가 중요한 이슈로 자리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는 유권자들로 하여금 한반도의 평화 기조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여권의 재집권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이러한 상황은 분열 양상을 보여왔던 여권에게는 정치적 통합을 재촉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한나라당에게는 남북문제로 인해 경쟁력이 약화되는 방향으로 작용하게 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그동안 여권은 한반도 평화 이슈를 선점함으로써 한나라당을 견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고 북한 또한 연초에 노동신문, 조선인민군, 청년전위라는 3대 신문의 공동신년사에서 주장했던 반(反)한나라당연대의 형성에 필요한 상황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는 점이 이를 입증한다. 이처럼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대선을 위한 유리한 환경 조성이라는 정치적 목적 이외는 특별한 실질적 진전이 기대될 수 없다는 점에서 문제가 적지 않다.

    게다가 한미관계는 점차 괴리(乖離)되고 있는 반면 북한의 대미 접근 노력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북한의 대미 접근을 위한 징검다리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이 경우 우리의 생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북한 핵문제나 주한미군 문제와 같은 핵심 사안에 대한 논의는 북미간에 이루어지고 우리는 어깨너머로 이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처지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열리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논의될 수 있는 문제 또한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첫째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북한 핵문제와 같은 핵심 사안에 대한 실질적인 진전은 기대할 수 없다. 북한은 이미 자신의 핵문제를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미국과의 직접 협상을 위한 정치적 무기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 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가 김일성 주석의 유훈(遺訓)임을 거듭 강조하면서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확인할 것으로 보이지만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서는 남북한의 공동노력을 통해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을 종식시키고 한미 합동군사연습 등과 같은 걸림돌을 제거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울 것으로 보인다.

    둘째 남북간 긴장 완화를 위한 상징적 수준의 합의는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노무현 정권에서 많이 거론되었던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와 관련하여 실질인 논의보다는 평화체제에 대한 선언적 수준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이와 같은 정치적 선언을 통해 한반도에 평화의 시대가 도래한 것처럼 대대적인 선전이 가능할 것이다. 이는 대선에서 북한에 비판적인 한나라당을 저지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카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평화체제를 위한 환경 조성이라는 미명 하에 북한이 남북관계의 걸림돌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정치적 문제를 제기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그동안 북한이 주장해 왔던 소위 남북관계의 진전을 막는 '근본 문제'들로서 서해 북방한계선(NLL) 재설정과 남한의 국가보안법 폐지 등과 같은 문제들의 해결을 촉구할 것으로 보인다.

    셋째 이산가족과 납북자 문제 등에서 일부 상징적 조치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고령의 국군포로나 납북어부 송환,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 등에 대해 전향적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실제로 몇몇 국군포로나 납북어부를 송환함으로써 남북간 화해무드를 조성하여 대선에 영향을 주려고 할 수 있다. 그 대신 김 위원장은 보다 많은 경제적 지원을 얻어내려고 할 것이다.

    결국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 군사 문제, 경제협력 문제 등과 같은 방안이 논의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북한 핵문제 해결에 대한 실질적 진전이 기대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이들 논의 또한 상당 부분 퇴색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미국이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성과가 가시화되기 이전에 한국이 전면에 나서는 것을 꺼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상에서 보듯이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대선에서 좌파정권의 재창출을 위한 대선용 이벤트에 불과하며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나올 수 있는 결과 또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실질적 조치보다는 대선에서 한나라당을 코너로 몰기 위한 선언적 성격의 조치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철저히 비판해야 한나라당은 이미 신대북정책을 발표하여 자신의 입에 스스로 재갈을 물린 상황에 처해 있다.

    이를 어찌할 것인가? 한나라당은 앞으로 한반도 평화 분위기에 압도당하는 대외적 상황과 더욱 거세질 한나라당 후보의 도덕성 시비라는 대내적 상황이라는 예리한 양날의 칼에 대비할 수 있는 전략적 수단을 갖고 있기나 한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