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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중에 '화려한 휴가'란 제목의 영화가 상영중이다. 친북좌파세력의 소위 지도자급에 속하는 사람들이 이 영화 보기 경쟁을 벌였다고도 한다. 그런데 한나라당 경선 후보 한 사람도 이 영화를 관람한 것을 자랑삼아 발표하였다. 다른 한 후보는 이 영화의 배경이 된 사건을 '사태'라는 객관적 용어를 사용하여 정동영의 항의성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이 영화가 단순한 영화가 아니라 어떤 이념적 목적을 가진 목적영화란 것을 알 수 있다.
친북좌파가 문화계를 장악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들이 이번 대선을 겨냥해서 문화라는 이름으로 어떤 공작을 펼칠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이번 화려한 휴가도 이들의 문화공작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문제의 그 ‘광주사태’와 관련하여 원론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다음과 같다. 국군을 적보다 더 미워하여 마치 원수처럼 공격한 무장폭동은 절대로 정당화될 수도 미화될 수도 없다.
내가 미국에 유학 중일 때였다. 문제의 그 광주사태가 발생한지 3-4년이 지난 때였다. 그 때 이신범이란 사람이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광주사태에 대한 강연을 하고 다녔다. 나는 그 당시 군인신분이라 어떤 분란에 휘말리지나 않을까 하고 조심하면서 그 강연에 갔다. 그 때 깨달은 것은 이신범은 지독한 반대한민국주의자란 것이었다.
그는 일본에서 제작하였다는 광주사태 비디오를 틀었다. 문제는 그 비디오에 비춰지는 화면이 아니었다. 문제는 화면과 상관없이 진행되는 해설(토오키)이었다. 그 해설은 국군을 북한의 인민군보다 더 지독한 적으로 묘사하고 있었으며 세상에 상상하기도 힘든 잔인한 폭력집단으로 매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해설을 뒷받침할 화면은 아무리 눈을 닦으며 보아도 없었다. 그냥 지어낸 거짓말이었다.
이신범 자신의 증언은 거짓과 거짓 선동의 극치였다. 그는 한국군은 월남전에서 사용한 건십을 동원해 광주시위자에게 기총소사를 하였으며, 따라서 광주희생자의 상처는 모두 총알이 머리로 들어가서 하체로 나와 있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한국군은 일부러 납탄을 광주시위자에게 쏘았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적에게 사용하는 것도 금지된 납탄을 광주시위자에게 쏘았다고 하였다.
나는 건십을 동원한 기총소사도 거짓이지만 특히 납탄을 쏘았다는 것은 명백하게 거짓임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광주에 사용하기 위해 납탄을 일부러 만들지 않는 한 군에 납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군을 이렇게 악랄한 방법으로 매도하는 이런 사람들에 의해 광주사태는 전세계에 알려졌다. 그러나 사실은 다르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광주사태에서 사망한 사람들이 모두 무고한 시민이며 모두 희생자인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그러나 이들은 경찰병력으로 질서유기가 불가능했고 급기야 무기고를 습격하고 군수품공장을 점령하여 무기를 탈취하고 장갑차 등 장비를 탈취하여 스스로 무장한 무장폭도로 변해있었다는 것을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아무리 이들의 주장이 정당하다고 하여도 이렇게 광주지역을 무정부상태로 만들고 더구나 국군을 대상으로 무력으로 대항하였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서든 정당화할 수 없는 폭거다.
그 어떤 정부든 또는 정권이든 한 지역이 무정부상태가 되는 것을 인용할 수는 없다. 그것은 빠른 시간 내에 진압되어야 하는 긴급사태다. 그 과정에 희생자가 없을 수 없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비극적인 현실은 국가나 정부를 부정한 반국가세력 또는 반정부 세력이 오히려 큰소리를 친다는 사실이다.
해방 직후나 건국과정에서 대한민국에 반대하여 무장투쟁을 한 공산주의자들이 지금은 버젓이 희생자로 그리고 명예회복과 보상의 대상으로 둔갑하였다. 친북좌파세력이 득세하게 되면서 역사 평가가 왜곡되게 된 것이다. 광주사태도 마찬가지다.
현재 광주사태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불가능하다. 특정지역의 지역정서와 결부되어 있고 또 특정 정치세력과 너무나도 깊이 연관되어 있어 광주사태 자체에 대한 객관적 평가는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 어떤 발언을 하든 정치적 쟁점으로 변질되고 급기야 지역감정이나 세력투쟁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광주사태가 민주화운동으로 공식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 평가 역시 광주사태를 민주화운동으로 판정하게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광주사태가 민주화운동이며 정당하다면 그 당시 정부는 정통성이 없는 정부가 되고 한국은 역사적 공백을 갖게 된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광주사태를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말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 평가이지 역사적 평가는 아니다. 겉으로 표현하는 사람은 적어도 마음속으로 광주사태에 대해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하는 것을 정당하지 못하다고 믿는 사람도 많다. 그렇다면 이 사건에 대한 평가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며 아직 그 성격을 규명 중이라고 보아야 옳다. 그렇다면 그 사건에 대해 ‘사태’로 부르는 것이나 ‘민주화운동’으로 부르는 것은 그 사람의 관점이나 정치적 입장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어느 것이 옳은지에 대해서는 국민이 심판할 것이다.
광주사태와 관련하여 국군을 인민군보다 더 잔인한 적으로 선전하는 것을 보면서 이런 식의 반대한민국적 관념이 자리잡고 있는 한 광주사태는 정당하게 평가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이런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관람하는 것은 그 자체가 정치적 행위다. 그것은 그 사건의 정당한 해석보다는 그 사건이 가진 선거전략적 의미를 더 크게 생각하고 그리고 그 사건과 연관된 세력의 호감을 사는 것에 더 큰 비중을 둔 행위로 보여진다. 그 행위의 정당성 여부 그리고 국민의 납득 여부는 표로서 평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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