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20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최영범 논설위원이 쓴 시론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여론조사가 권력이 되고 있다. 정치권은 범여권, 야권 할 것없이 1000명이 유권자 3700만명의 의사를 압축하는 기술인 여론조사에 매달리고 있고, 그 여론조사는 대통령 후보를 좌우하는 권력이 된다. 여론조사가 없으면 무기력에 빠질 정도로 ‘마술’에 걸린 것이다. 민심이 여론조사로 대변될 수 있다면야 별 문제다. 그 여론조사로부터 나오는 권력은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 되고 유토피아다. 하지만 그 여론조사가 박빙을 다투는 후보경선에서 결정적인 작용을 하게 되면 유토피아는 원래 뜻대로 ‘어디에도 없는 곳’이 되고 만다. 여론조사란 기재가 후보간 박빙의 상황에서는 모순이 작용하는 한계를 가지기 때문이다.

    여론조사의 가장 큰 모순은 ‘시간차’다. 여론은 변한다. 작년 올해가 다르고, 지난 달 이번 달이 다르고, 어제 오늘이 다르다. 대선후보를 대선 4개월 전의 여론으로 만들자고? 난센스다. 한나라당이 8월20일 결과를 발표할 대선후보 경선 결과 4가지 항목중 하나인 여론조사는 20% (4만명)를 차지한다. ‘단일 후보’ 성사에 목을 매고 있는 범여권도 8월19일을 전후해 20명이 넘는 후보군을 8명 내외로 압축하기 위해 ‘컷 오프’(예비경선)를 할 예정이다. 역시 가장 비중있는 도구는 여론조사가 될 터이다. 다른 정당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과거의 예는 ‘후보 당선 = 대통령 당선’의 착각을 불러일으켰던 지지율이 대선까지 유지된 적이 없음을 증명한다. 결국 시간차가 있는 여론조사는 신봉할수록 그 후보를 ‘추억의 후보’로 만들 확률이 높다.

    여론조사는 설문방식에서 또 한번 마술을 부린다. 질문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큰 차이가 난다. 한나라당의 이명박·박근혜 경선후보가 여론조사 설문을 놓고 ‘선호도’냐 ‘지지도’냐의 싸움을 벌이는 것도 10%포인트 이상의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정몽준 두 후보가 후보단일화 설문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 ‘대응하는’으로 할지, ‘경쟁력 있는’으로 표현할지를 놓고 다툰 것도 같은 이유다. 여론조사는 또 조사를 하는 시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시점의 마술’도 부린다. 전체 유권자에 비례하는 세대, 계층, 지역 등에 표집을 맞춰야 하는 만큼 휴대전화보다는 집전화로 한다. 그래서 시간대에 따라 받는 사람이 달라지는 집전화는 결과도 그만큼 달라진다.

    특히 박빙의 승부상황에서 표집오차는 결정적인 흠이 된다. 1000명 단위 전국 조사의 경우 표집오차는 ‘95% 신뢰구간에 ±3.1%’이다. 통계적으로 100번 중 95번은 3.1% 정도의 오차 범위 이내에서 맞지만 나머지 5번은 아예 틀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1000명에 대한 조사 결과를 4만명의 그것으로 환산, 가중치를 둔다면 그 오차는 더 커진다. 여론조사과정에서는 다른 정당 지지자가 본선을 의식해 위장응답을 하는 ‘역선택 마술’도 숨어 있다.

    그러나 정작 심각한 것은 이런 부정확성 때문에 빚어지는 ‘불복(不服)’ 후유증이다. 1%포인트만 앞서도 대선후보가 되는 경선룰에서 수치의 부정확성은 특히 박빙일 때 이를 부른다. 십중팔구는 ‘여론조사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이 제기될 것이고, 공권력에 의한 압수수색은 물론 재점검이 벌어질 게 뻔하다. 통상 여론조사는 표본의 30%를 재검증하는 규칙이 있고, 조사자의 성실도에 따라 결과는 차이가 난다. 그래서 재점검시 응답자 300명 중 2~3명, 1000명일 경우는 1%인 10명 정도가 의견을 바꾸는 것이 통례다. 따라서 이런 재점검 결과는 패배를 승복하기 어렵게 만들고 또 다른 혼란을 부를 수 있다. 여론조사는 응답자들의 성실성을 담보해 실시되지만 주민등록번호 대조같은 절차적 엄격성은 없다.

    이런 맹점 때문에 참고자료 이상의 가치를 가져서는 안된다. 하지만 정치권은 여론조사를 권력을 만들어내는 ‘도깨비 방망이’쯤으로 믿는 듯하다. 여론조사업계는 정치권의 여론조사 오남용(誤濫用)이 가져올 불신을 우려해 대선후보 당락용 여론조사를 거부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여론조사는 잘 쓰면 약이지만 잘못 쓰면 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