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은 누구에게나 타인에 대한 우월감과 타인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다만 그 욕구의 실현 조건과 모습이 개인에 따라 다를 뿐이다. 정치 세계는 그런 욕구가 강한 사람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무대라 할 수 있다. 권력의지가 뚜렷하고 그 의지를 실현할 기회를 찾는 것이 현실 정치이다. 이런 점에서 정치인에게 권력의지는 필요조건이다. 이것이 결여된 정치인은 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여권의 대통령 후보로 유력했던 고 건 전 국무총리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중도하차는 권력의지가 약한 정치인의 말로(末路)가 어떠한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정치인에게 권력의지만 있고 경륜과 지혜가 없다면 지도자가 되기가 쉽지 않거니와 설령 그런 기회를 포착한다 하더라도 성공을 거두기가 어려울 것이다. 필요조건인 권력의지만 있고 경륜과 지혜 등의 충분조건이 결여된 경우는 권력중독증에 걸리기가 쉽다. 광기(狂氣)의 역사 저변(底邊)에는 어떤 근본주의와 더불어 권력자의 권력중독증이 자리하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데이비드 L. 와이너(Daivid L. Weiner)는 『권력중독자』라는 책을 통하여 권력중독 현상에 대하여 상세히 분석하고 있다. 그는 권력중독자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① 권력중독자는 필요할 경우 매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② 권력중독자에게는 세상에 자기보다 똑똑하거나 창의적인 사람은 없다.
    ③ 권력중독자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명령을 따르느라 고생하는 것을 보고 도취감을 느낀다.
    ④ 권력중독자는 분노를 폭발시키거나 다른 사람들을 신나게 깨부수고 난 후에도 연민이나 가책이 전혀 들지 않는다.
    ⑤ 권력중독자는 자신의 목표물을 넣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⑥ 권력중독자는 어떤 잘못에 대해서든지 그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씌울 방도를 기가 막히게 찾아낸다.

    우리는 2007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권력중독자의 전형은 아니더라도 거기에 가까운 유형의 사람이나 현상들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전·현직 대통령의 지나친 대선 개입, 여권 정치인들의 명분 없는 이합집산(離合集散), 피아(彼我) 식별이 안 되는 한나라당 경선의 이전투구(泥田鬪狗) 등, 살벌하고 치졸한 파워 게임에 대하여 권력중독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물론 거기에는 그럴 듯한 명분과 논리가 포장되어 있지만, 특정 지도자 및 집단의 권력중독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내 아니면 안 된다”는 독재와 독선의 산물인 것이다.

    특히 정치적 뜻을 같이 한다고 하는 정당 내에서 벌이는 진흙탕 싸움은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우선 당 대표와 당 소속 서울시장을 지낸 후보에 대하여 ‘검증’을 하겠다는 것은 코미디에 가깝다. 이것은 지도자의 자질이 의심되는 사람들을 당 대표와 서울시장으로 내보냈다고 고백하는, 심각한 자가당착(自家撞着)이다. 더욱이 여권의 공작 문건을 건네받아 당내 상대 후보를 공격하는 데 활용한 것은 어느 모로 보더라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승리를 위해서는 적과의 내통도 불사하겠다는 위험천만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최소한의 정치 도의를 망각하는 처사이다.

    이처럼 비전과 청사진은 보이지 않고 권력의지만 활개를 치는 정치는 분명 후진적인 것이다. 그리고 경세제민(經世濟民)으로서의 정치보다는 권력투쟁으로서의 정치만이 판을 치는 나라는 후진국이다. 또한 자신의 긍정적인 것을 통해 승부를 겨루지 않고 상대의 부정적인 것을 조작하거나 부각시킴으로써 반사 이익을 얻으려 하는 캠페인은 후진 정치의 표본이다. 나아가 법치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정치가 있는 것인데, 정치마저 법치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은 정치의 실종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흑백 논쟁과 진실 게임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법을 동원하는 것이겠지만, 지나친 흑백 논쟁과 진실 게임 자체가 선진 정치와는 거리가 먼 현상이다.

    ‘정치의 3C’라고 하는 상식(Common Sense), 의사소통(Communication), 타협(Compromise)이 심히 부족한 오늘날 한국 정치의 모습, 그것은 권력중독증에 걸린 환자와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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