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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이 7월 4일 새로운 대북정책인 '한반도 평화 비전'을 발표했다. '북한의 핵 폐기와 남북관계 진전의 분리'를 골격으로 하는 새로운 대북정책의 핵심은 과거 한나라당 대북정책의 기조가 되어왔던 상호주의 원칙을 포기하기로 한 것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대북 지원의 전제조건으로 견지해왔던 '북한의 핵 폐기'를 더 이상 고집하지 않기로 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정형근 최고위원은 "북한의 핵 폐기가 전제되지 않아도 경제협력과 지원 등의 대북정책 기조는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핵평화체제 착근, 경제공동체 형성, 통행·통신협력체제 기반 구축, 인도적 협력 및 지원, 인권공동체 실현이라는 5대 중점과제와 이를 위한 남북 정상회담 추진, 남북미중 4자간 종전선언 검토, 남북 평화협정 체결 추진, 남북 총리급 회담 정례화, 서울과 평양에 경제대표부 설치 등의 실천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한반도 평화 비전에 대해 한나라당 대선주자들도 대체적으로 공감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 측은 "당의 새로운 대북정책이 이 전 시장의 '비핵·개방 3000' 구상과 맥을 같이한다"고 평가했고 박근혜 전 대표 측은 "박 전 대표가 당 대표 시절 발표했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로써 한나라당은 지도부를 비롯해 대선주자에 이르기까지 선거전략이라는 명분 하에 당 전체가 일사분란하게 대북정책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의 새로운 대북정책은 추진 동기와 향후 영향이라는 측면에서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한나라당이 가장 심각하게 고려했을 대선에 대한 영향도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된다. 첫째 한나라당의 이번 조치는 전통적으로 한나라당을 지지해 왔던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정서와는 많이 다르다는 점에서 한나라당 자체에 대한 악영향이 우려된다. 한나라당은 이번 조치를 통해 대선에서 전통적 지지 기반인 보수 성향 유권자에다 중도 성향 유권자를 흡수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북한의 핵 개발에 따른 안보 위협이 심각한 상황이라는 점에서 한나라당의 이번 조치는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우려와 반발을 고조시킬 가능성이 있다. 이들은 좌파정권 10년 동안 대북정책의 근간이 되었던 안보에 우선하는 대북 접근에 대해 많은 우려와 반대를 표출해 왔다. 그것이 바로 한나라당이 온갖 무기력과 추문 속에서도 꾸준히 이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원인이 되었으나 이번 조치로 인해 그 기반이 취약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또한 한나라당의 이번 조치는 북한의 핵 폐기를 더 이상 고집하지 않기로 했다는 점에서 한나라당의 '안보 정당' 이미지에 적지 않은 손상이 우려된다. 한나라당이 이번 조치를 통해 대선 과정에서 예상되는 '북풍(北風)' 가능성을 사전에 예방하고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와 안보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려 함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의 이번 조치는 비핵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견지하고 이를 위해 국제사회와의 공조에 앞장서 주기를 기대하는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기대와는 거리가 멀다.
둘째 한나라당의 이번 조치는 우리나라에서 보수 정당의 입지를 크게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한나라당뿐 아니라 우리나라 정당 체계에 대한 악영향이 우려된다. 과거 대북정책을 제외한 나머지 분야에서는 사실상 좌파 정권과 공조해 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한나라당의 이번 조치는 보수 성향 유권자들을 방황하게 만드는 결정적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당은 이념과 정책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결사체로서 정당의 기본 이념과 가치를 지키고 이에 입각한 정책을 개발하여 유권자들에게 제시하고 이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와 선택을 통해 유지되는 것이 원칙이다. 과거 우리나라의 정당 체계는 보수 정당을 지향하는 여야 대결의 형태를 보여 왔으나 최근 10여 년 동안은 점차 좌파 성향의 여당과 보수 성향의 야당의 대결 형태로 변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보수 정당의 가치와 이념을 포기한다면 그동안 한나라당을 지지해왔던 보수 성향 유권자들이 굳이 한나라당을 지지할 명분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는 현재 일각에서 거론되는 보수 진영의 제3 후보론 추대 가능성이나 한나라당을 대체할 새로운 보수 정당의 출현 가능성이 더욱 탄력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한나라당은 크게 각성해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은 지난 두 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해 보았는가? 한나라당은 향후 대선 과정을 통해 또다시 조작될 여론과 이에 따른 좌파의 단합에 대항하여 승리할 수 있도록 보수의 단합을 이끌어 내야하며 이를 위해서는 보수 성향 유권자들을 묶을 수 있는 분명한 가치와 이념을 견지해야 한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이 흩어지는 상황에서는 중도 성향 유권자들의 지지도 기대할 수 없다. 한나라당은 보수 성향 유권자는 자동적으로 한나라당 지지자라는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