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인들은 대체로 자부심과 자신감이 강한 사람들이다. 그런 DNA를 갖고 있기에 권력에 대한 욕구를 끝없이 충전하고, 몇 번의 패배에도 오뚝이처럼 일어서는지 모른다. 그러나 자부심과 자신감이 지나친 나머지 ‘내 아니면 안 된다’는 독선적인 모습을 나타내고, 다른 정치인들에 대한 강한 우월감에 사로잡히는 경우를 왕왕 보게 된다.

    그런 자부심과 자신감이 극단적일 때 우리는 ‘나르시시즘’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주지하듯이 ‘나르시시즘’이란 자기를 사랑의 대상으로 삼고 거기에 도취되는 심리 상태를 말한다. 이 말은 19세기 독일의 정신과 의사 폴 네케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물에 빠져 죽은 아름다운 소년 나르키소스 이야기에서 끌어와 만든 심리학 용어이다.

    샌디 호지키스라는 심리학자가 쓴 『나르시시즘의 심리학』은 나르시시즘에 빠진 사람들의 심리 상태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이 책에 의하면, 나르시시스트는 ① 끝없는 타인 착취 ② 경멸 뒤에 감춘 시기심 ③ 오만 ④ 마법적 사고 ⑤ 가면 뒤에 숨겨진 수치심 ⑥ 제 멋대로 자격 부여하기 ⑦ 경계를 침범하는 이기심의 특성을 갖고 있다고 한다.

    저자의 나르시시스트 설명 중에서 중요한 부분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자기의 우월함을 위협받은 그는 온갖 추잡한 말로 상대방을 더럽힌다. 이런 멸시는 현실과 전혀 상관없는, 나르시시스트 특유의 왜곡, 불타는 시기심을 감추기 위한 제스처일 뿐이다.”(경멸 뒤에 감춘 시기심)

    “누군가를 짓밟고 깎아내릴수록 자신이 더 높아진다고 여기는 오만한 그들. 그래서 대장 행세를 하려 들고, 타인을 심판하려 들며, 완벽주의를 내세우고, 권력에 집착한다.”(오만)

    “나르시시스트에게 타인은 자신에게 동의하고, 순종하고, 봉사하고, 위안을 주기 위해 존재할 뿐이다. 나의 욕구를 채우는 데 쓸모없는 사람은 아무 가치도 없고, 아무렇게나 다루어도 그만이다. 자신을 어떤 사람보다 더 중요하고, 더 매혹적이라 굳게 믿는 그들에게는 그 어떤 도전도 분노와 공격을 불러일으킨다.”(제 멋대로 자격 부여하기)

    우리는 몇 년 전부터 대한민국 정치에서 이런 현상을 많이 목도해 왔다. 금년은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라서 그런지 나르시시즘의 정치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 같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통령과 일부 여·야 후보 그리고 그와 연관되는 정치인들이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지 않나 싶다. 네거티브 캠페인이 판을 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해가 간다.

    특히 같은 정당 안에서 벌어지는 동지들끼리의 이전투구(泥田鬪狗)는 나르시시즘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다. 끝없이 이어지는 특정 후보 발가벗기기는 ‘그 사람은 대통령 혹은 대통령 후보가 되면 안 된다’와 ‘나와 우리의 도덕성이 그에 비해 월등히 낫다’는 고도의 자부심과 자기 확신 속에서 이루어져 왔다. 그것은 마치 성자(聖者)가 악한(惡漢)을 다스리는 듯한 모습이다.

    그러나 그에게 돌을 던질 자 별로 없는 것 같다. 그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더 부도덕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나서면 안 된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나머지 현실과 소망을 분간하지 못하면 안 된다. 한나라당의 도덕성 회복은 더 근원적인 곳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심각한 본말전도(本末顚倒)는 옥석(玉石)을 함께 태우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목욕물을 버리려다 아이까지 버리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객원 칼럼니스트의 칼럼은 뉴데일리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