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의 방송과 노동신문을 보자'

    한나라당이 4일 발표한 새 대북정책인 '한반도 평화비전'에 포함된 내용이다. 6개월간 대북정책 기조수정 작업을 주도한 정형근 최고위원은 이날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국회의원 및 당협위원장 연석회의에서 새 대북정책을 밝히고 당론으로 추인 받으려 했다.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이 내놓은 정책으로는 파격적인 것이다. 정부의 대북 쌀 지원을 '대북퍼주기'라고 비난하던 한나라당은 북한 극빈계층에 '연간 15만톤 쌀 무상지원'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외에도 이날 발표된 새 대북정책의 내용은 매우 급진적이다. 당장 당내에서는 보수성향 의원들의 반발은 물론 '당 정체성'논란까지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이런 우려는 곧바로 현실로 나타났다. 정 최고위원이 참석자들에게 새 대북정책인 '한반도 평화비전'을 설명하자 곧바로 보수성향 의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포문은 송영선 의원이 열었다. 송 의원은 "지난 10년간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을 '실패했느냐' '성공했느냐'로 나누는 잣대는 두 가지다. 하나는 '북의 선군정치 전략이 바뀌었는지', 다른 하나는 '북의 인민생활이 나아졌는지'하는 것"이라며 "두 가지 다 나빠졌다"고 주장했다. 송 의원은 "햇볕정책 시작의 전제는 남쪽의 우월한 경제력으로 북의 우월한 군사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지만 오히려 북한의 군사력을 강화시켰다"며 "이런 북한의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고 따졌다. 

    곧바로 당내 대표적 강경보수성향인 김용갑 의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김 의원은 "아까 연찬회 들어올 때 강재섭 대표가 남북관계에 대해 정형근 최고위원이 발표할 것이니 더 얘기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부탁을 했다"며 말문을 연 뒤 "세상이 변하고, 남북관계가 변하고, 한나라당이 대선에 임하면서 과거처럼 수구적인 것을 탈피해야 한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한나라당다워야 하는데 너무 갑자기 변하면 국민들 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성급하게 다 해주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느냐. 식량지원문제도 지금 40만톤 차관 지원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 15만톤을 무상으로 더 주겠다는 문제도 국민정서를 감안해야 한다"고 지적한 뒤 "왜 헌법 3조 영토조항도 없애지 놔뒀느냐. 이것도 없애버리면 더 시원했을 텐데…"라고 따졌다.

    김기춘 의원도 거들었다. 김 의원은 북한의 방송과 신문 전면수용 조항을 문제 삼았다. 그는 "대체로 만족하지만 가령 북한 방송을 전면적으로 개방하겠다고 하면 우리 방송은 북한에 하나도 안 들어가는데 이것은 전혀 상호주의적이지 않다"면서 "이 문제는 충분한 토론이 있어야 하고 설득할 것은 설득한 뒤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상배 의원은 "선거 5개월 남겨두고 남북정상회담을 하면 결국 평화체제가 될 것이고 그러면 군축얘기가 나온다. 군축 얘기가 나오면 병역기간이 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모병제도 검토한다고 할 것이고 방송에서 (여권이)모병제 할 것처럼 방송하면 한나라당은 또 당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50일 있으면 후보가 결정되니까 후보자 입을 통해 하도록 하지 왜 중간에 불쑥 튀어나와 얘기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개탄했다.

    이런 지적에 정 최고위원은 "대북정책은 총회로 정리되지 않는다. 지난 2월 초 동북아의 급격한 변화정세와 2.13합의 등으로 한나라당이 명확한 대북정책이 있어야 한다는 판단 하에 강재섭 대표 지시로 6개월간 준비해왔다"면서 "전재희 전 정책위의장, 이주영 정책위의장은 물론 외교·국방·정보의 중진 의원들을 중심으로 십수 차례 검토했고 교수들과도 논의했다. 최고위에서도 논란을 거쳐 여러 번 수정했고 반대의견도 있었지만 그런 절차를 거쳤다"고 반박했다.

    정 최고위원은 "시기는 지금도 늦었다. 한반도를 둘러싼 가파른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했고 문제가 된 북한의 방송 및 신문 전면수용 조항에 대해서도 "북한 방송과 노동신문도 봤는데 우리 국민의 수준에서 보면 너무 유치해 북한의 실태를 더 적나라하게 볼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