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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3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우리나라의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률이 인구 10만 명당 5.28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불명예스러운 1위를 기록했다. 녹색도시연구소가 그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이 수치는 OECD 국가 평균 사망률(1.58명)의 세 배를 훌쩍 웃돈다. 길을 걸을 때조차 생명의 위협을 받아야 하는 나라다. 2005년에도 정부가 세운 목표치 1274명의 두 배 가까운 2457명이 보행 중 교통사고로 숨졌다. 특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대도시의 경우 이면도로나 주택가·시장 등 인도와 차도가 제대로 구분되지 않은 곳에서 특히 보행자 사망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 농촌에서는 노인들의 교통사고 피해가 특히 심각하다. 지난달 한 시민단체가 조사한 결과 농촌 지역 노인 네 명 중 한 명(23.6%)이 교통사고를 경험했으며, 인도·차도 여부가 모호한 곳에서 가장 많이 사고를 당한 것으로 집계됐다. 우리의 65세 이상 노인의 교통사고 사망률(2005년)은 10만 명당 38.8명으로 OECD 평균보다 세 배 이상 높다.
대책의 초점은 차량 아닌 보행자를 최우선시하는 데 맞춰져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인도와 차도가 확실히 나뉘도록 시설물을 대폭 보강해야 한다. 걷다 보면 중간에 뚝 끊겨 위험을 무릅쓰고 차로를 이용해야 하는 길들도 대폭 손봐야 한다. 보행자와 차량이 함께 이용하는 생활도로의 자동차 속도를 시속 30㎞ 이하로 제한하는 ‘존(zone) 30’ 제도나 보행우선지역 확대 같은 기존 대책도 조기에 예산을 투입해 집행하라.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률을 낮추는 데 기여한 스쿨 존을 본뜬 ‘노인 존’ 지정도 고려할 만하다. 교통신호 체계도 보행자 보호를 염두에 두고 개선할 필요가 있다. 경찰은 인도를 헤집고 달리는 오토바이를 가차없이 단속·처벌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인명을 앞세우는 운전자의 마음가짐이다. 지금 내 가족이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며 운전한다면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률이 이렇게 심각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