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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두 가지의 얼굴을 갖고 있다. 하나는 경세제민(經世濟民)으로서의 정치이고, 다른 하나는 권력투쟁으로서의 정치이다. 전자가 당위(이상)라면, 후자는 존재(현실)이다. 또 전자를 추구하는 정치인을 일컬어 statesman이라 하고, 후자를 추구하는 정치인을 가리켜 politician이라고 한다. 미국 성직자인 제임스 클라크의 표현대로 하면, ‘다음 선거’를 생각하는 정치인은 politician이고,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정치인은 statesman이다. 굳이 우리 말로 번역한다면 politician은 정치꾼 혹은 정상배(政商輩)라 할 수 있고, statesman은 정치가 혹은 경세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선현들은 정치의 양면성과 관련된 말들을 많이 남겨놓았다. “정치란 조국에 대한 사랑 말고는 아무 것도 아니다(도스토예프스키)”와 “덕으로 정치를 하는 것은 마치 북극성이 제자리에 있고 여러 별들이 그것을 향하여 도는 것과 같다(공자)”는 경세제민으로서의 정치를 설명하고 있다. 반면에 “전투에서 적을 속이는 것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마키아벨리)”와 “붕당은 투쟁에서 나오고, 투쟁은 이해(利害)에서 나오며, 벼슬자리는 적은데 벼슬할 사람은 많은 데서 나온다(성호 이익)”는 권력투쟁으로서의 정치를 말하고 있다.
제도 정치는 이 두 가지가 늘 교차하는 장(場)이다. 두 가지 가운데 하나가 빠지면 제도 정치는 존속할 수가 없다. 다만, 권력투쟁으로서의 정치가 지배하는 나라의 국민들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선진국일수록 경세제민의 정치가 앞서고, 후진국일수록 권력투쟁의 정치가 횡행한다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의 일이다.
정치의 두 가지 모습이 교차하는 가장 전형적인 사례는 대통령 선거이다. 대통령이 되었을 때 국가를 경영하기 위한 비전과 청사진을 마련하는 일을 하는가 하면, 대통령에 당선되기 위하여 다양한 수단과 방법으로 상대 후보들과 치열한 파워 게임을 펼친다. 후자의 경우도 비전과 정책을 통하여 좋은 대통령 후보감임을 국민들에게 설득하는가 하면(포지티브 캠페인), 흑색선전과 인신공격 등 상대 후보에 대한 공격을 통하여 반사 이익을 얻고자 하는 방법(네거티브 캠페인)도 펼친다. 전자는 축제에 가깝고, 후자는 그야말로 이전투구(泥田鬪狗)라 할 수 있다.
2007년은 정치가 정상적으로 기능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 20년 동안 경세제민으로서의 정치보다는 권력투쟁으로서의 정치가 두드러진 것은 아이러니이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제대로 펼칠 역량이 아직 구비가 되지 않은 것인지, 20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이 지났건만 아직도 정치가 기형적인 모습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다른 부문들은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빠른 발전을 하고 있는 데 비하여, 유독 정치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지체(遲滯) 현상이 국가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민주화 20주년에 실시되는 2007년 대통령 선거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경세제민을 위한 노력보다는 권력투쟁의 몸부림이 펼쳐지는 현실이 서글프다. 국가와 국민을 살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야겠다는 정글의 법칙만 지배하고 있다. 여권의 이합집산 움직임, 한나라당 유력 주자들의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싸움, 여기에 전·현직 대통령들의 개입, 제 철 만난 듯 네거티브 보도에 지나치게 열중하는 언론, 앞으로 펼쳐질 시민사회에서의 치열한 다툼 등등, 소모적이고 살벌한 풍경만 연출되고 있다. 민주주의를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이라고는 하지만, 지나치게 높은 비용인 것 같다. 선거 문화든, 권력 구조든 커다란 전환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고 건 전 총리와 이명박 후보가 한때 여·야의 유력한 대안으로 떠올랐던 것은 이런 권력투쟁의 정치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 왔기 때문이다. 권력투쟁보다는 경세제민에 더 능한 지도자들로 국민들은 받아들였던 것이다. 상징적으로 말하자면, ‘여의도’보다는 ‘세종로’에 더 어울리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고 건 전 총리는 경세제민의 경륜은 있었는지 몰라도 권력투쟁이 생리에 맞지 않은 탓으로 도중하차하고 말았다.
이제 이명박 후보만 남았는데, 이명박 후보는 본의 아니게 진흙탕 싸움으로 끌려나왔다. 그래서 그의 장점인 경세제민의 역량을 제대로 보여줄 기회를 놓치고 있다. 이번 대선전을 진흙탕 싸움으로 이끈 사람들에게 우선적인 책임이 있지만, 이명박 후보 역시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장점을 입증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진면목을 보여줌으로써 선거 분위기를 전환해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제기되는 의혹들에 대해서는 일도양단(一刀兩斷)의 자세로 명쾌하게 끊고 넘어가야 한다.
박근혜 후보는 제도 정치와 오랜 인연을 맺어 왔지만, 그의 품성과 이미지는 ‘권력투쟁’과 거리가 멀다. 난파 직전인 상황에서 한나라당 대표를 맡은 데서 알 수 있듯이, 정치권에 입문하기 전이나 후나 늘 따뜻하고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조국과 결혼했다’는 그 스스로의 말처럼 확고한 국가관과 애국심을 갖고 있다. 박근혜 후보 또한 경세제민의 지도자로서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 대한 도덕적 우월감의 발로인지, 아니면 자신도 모르게 권력투쟁의 덫에 빠진 것인지 이번 한나라당 경선을 네거티브 선거로 전락시키고 있는 것은 분명히 소망스럽지 못하다. ‘목욕물과 함께 아이까지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흔히 대한민국의 선진화는 정치의 선진화가 첩경이라고들 말한다. 실상 그렇다. 정치의 선진화는 경세제민으로서의 정치가 권력투쟁으로서의 정치를 누를 때 가능하다. 이런 맥락에서 politician보다는 statesman이 대한민국을 이끌어가야 한다. 민주화 20년, 세 명의 대통령들은 statesman보다는 politician에 가까웠다. 이제 시대의 한 획을 긋는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 국민들은 statesman을 선출할 수 있을까? 그래서 선진국으로 가는 티켓을 예약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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