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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6월 26일 열린 전국 대학총장과의 토론회에서 '통합과 균형'이라는 다분히 도덕적인 가치를 앞세워 내신 위주의 대입정책을 강조하였고 교육부도 이 자리에서 2009학년도부터 저소득층 6만 4000명을 정원외로 입학할 수 있게 하는 '기회균등할당제' 도입 계획을 밝혔다. 이는 노대통령이 지난 3월 22일 "가난을 대물림한다"는 논리로 본고사 금지를 포함하는 '3불(不)정책'의 폐지 요구를 일축한데 이어 나온 발언으로 우리나라 교육의 하향 평준화가 더욱 심화될 위기에 직면했다.
한편 지난 6월 8일 부산에서 열렸던 한나라당 교육·복지분야 대선주자 토론회에서는 교육의 평준화가 가장 열띤 쟁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은 평준화에 대한 분명한 의견 개진보다는 시군구별, 광역시도별 투표를 통해 주민이 평준화 존폐를 선택하게 하는 단순한 평준화 보완책을 제안하는데 그쳤다. 이는 평준화의 폐해에 대한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의 확실한 인식과 이를 개선하겠다는 확고한 신념이 결여된 것으로 국민들에게 적지 않은 실망을 안겨주었다.
교육문제는 우리 아이들의 장래가 달린 문제이자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교육의 평준화가 초래한 폐해가 문제가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이 세계와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충분한 자질을 갖춘 인재로 성장해야 비로소 우리 아이들이나 국가의 미래가 제대로 열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노대통령을 비롯한 정책당국은 능력 있는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정책은 커녕 교육을 학력 차별 철폐라는 이상한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는 중이다.
우리나라는 교육이 부족한 나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교육은 실패라는 말을 듣고 있다. 이는 대학진학률이 82%라는 높은 수준에 이르고 있을 정도로 양적으로는 성장했지만 평준화라는 주술(呪術)에 취해 정작 추구해야 할 잠재력이 뛰어난 학생들을 우수한 인재로 키워내는 교육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초중고 교육의 평준화에 이어 대학마저 평균주의에 빠진 결과 학생 선발에서 교육 품질에 이르는 교육 시스템 전반에 걸쳐 부실화를 초래한 결과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2005년 대학의 경제요구 부합도' 조사에서 우리나라가 60개국 가운데 52위를 기록한 사실과(2007년 3월 31일, 동아일보) 2006년 10월 세계경제포럼(WEF)이 행한 '21세기 새로운 경제에 대응하는 각국의 교육제도 평가' 조사에서 우리나라가 경쟁국인 싱가포르(2위), 홍콩(7위), 대만(9위)보다 훨씬 뒤져 케냐에 이어 38위로 나타난 사실은(2007년 6월 3일, 동아일보) 우리나라 교육의 부실 상황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 결과 기업에서는 연간 3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을 취업 인원의 재교육에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산업화 시대에는 교육의 양적 성장만으로도 외국과 경쟁할 수 있었고 이제까지 우리나라 교육도 이 범주를 넘지 못했다. 그러나 21세기 지식정보화 시대에는 이에 알맞은 특별한 교육이 이뤄지지 않으면 외국과의 경쟁에서 살아 남기 힘들다. 기존의 낡은 교육 시스템에 얽매이면 급변하는 사회에 제대로 적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전략가 오마에 겐이치의 지적대로 현재는 누구나 공감하는 창의적 사고 방식과 다른 사람이 갖고 있지 못한 기술을 가진 '글로벌 리더'만이 성공하고 풍요한 삶을 향유할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은 "한 명의 우수한 인재가 1만 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라는 말로 지식정보화 시대에 알맞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인재를 더 천재로 만드는 교육이 아니면 한국 경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도 "한국이 세계를 리드하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산업화 시대의 근로자 양성을 위한 공장식 교육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의 지적대로 지식정보화 시대를 이끌어갈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려면 교육 시스템을 혁신하여 교육 품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평균주의에 빠져 있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서는 우수한 인재를 키울 수 있는 길이 막혀 있어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를 제대로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선진국들은 오래 전부터 대학의 자율과 경쟁을 강조해 교육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유럽에서도 대학교육의 평준화를 추구하다가 대학의 질은 물론 국가 경쟁력까지 떨어지자 이에 대한 반성이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프랑스의 경우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취임 후 첫 개혁으로 대학예산 배정에 성과제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과거 우리나라가 참혹한 전쟁의 폐허를 딛고 세계 10위권 경제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전쟁의 와중에서도 멈추지 않았던 교육 덕분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은 그 성과마저 잃을 만큼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 위기에서 벗어나는 길은 평균주의에 빠져 있는 교육을 혁신하는 것뿐이다. 그 핵심은 바로 현행 입시제도의 개혁과 학생의 성취도, 교원의 능력, 대학의 수준을 포함하는 교육 전반에 대한 끊임없는 평가를 통해 교육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이를 통해 우수한 인재를 배출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성장 잠재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한국이 성장 잠재력을 강화하지 못하면 중국의 일개 변방이 되거나 필리핀 같은 빈국(貧國)으로 추락할 수 있다고 충고했던 앤디 시에 모건스탠리 아태본부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한국이 성장 잠재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은 우수한 인적자원(人的資源)을 양성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교육이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미래를 열어 가겠다고 나선 대선주자라면 상상을 뛰어 넘는 각오와 용기로써 평균주의를 깨부술 수 있어야 한다. 평준화라는 주술(呪術)에 취해 있을 여권 주자들은 차치하고라도 한나라당 대선주자들 만이라도 교육개혁의 밝은 청사진을 밝혀주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