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2일자 오피니언면에 언론인 류근일씨가 쓴 '6·10민주화 세대의 마지막 소임'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1987년 6월의 민주화.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요즘, 당시의 민주화 시위대가 ‘호헌 철폐, 대통령 직선’을 외치던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는 며칠 전 대규모 반(反)좌파 국민대회가 열렸다. 이러한 변화는 과연 무엇을 말해 주는가? 한마디로 4·19 이래의 ‘참다운 민주화’ 정신을 변질시킨 3류 좌파 기득권 세력의 정치적 도덕적 문화적 수명이 다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자명하다. 저들이 ‘대한민국 59년’에 너무나 적대적이었고, 저들의 영혼이 너무나 병들었으며, 저들의 권세가 너무나 타락해, 마침내 저들의 그런 마각이 국민에게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저들은 왜 단순한 ‘민주사회의 진보파’가 아니라 ‘반(反)대한민국 세력’인가? 저들이 ‘대한민국 59년’을 ‘분열주의-기회주의의 역사’라고 폄하하고, 대한민국 헌법을 ‘그놈’이라고 모욕하는가 하면, 선거관리위원회 등 대한민국의 헌정체제에 정면으로 모반했기 때문이다. 수십 개의 정치범 수용소에서 임신한 여성의 배를 걷어차고 신생아를 살해하는 전범자 김정일을 ‘민족’과 ‘통일’의 이름으로 끌어안으면서도 그것에 항의하는 ‘반(反)폭정’ 세력을 오히려 ‘반(反)민족’ ‘반(反)통일’로 낙인 찍어 적대하기 때문이다.

    저들은 또한 영혼이 병든 ‘신경 정신과 중환자(重患者)’들이다. 온갖 콤플렉스, 증오심, 인격 장애, 정서적 황폐, 불안 초조 긴장, 막돼먹은 말투와 짓거리, 매사 ‘야당 탓’ ‘반(反)좌파 탓’ ‘언론 탓’으로 돌리는 편집증(偏執症), 그리고 사이비 종교의 교주를 닮은 혹세무민의 분위기 등이 바로 저들의 ‘비정상적’인 증후를 감지하고도 남게 만든다. 더도 덜고 말고 최근의 ‘대통령 노무현’의 ‘끔찍한’ 막말 폭거, 그리고 ‘대부(代父) 김대중’의 좌파집권의 ‘사생결단’ 운운한 것만 보아도 저들이 얼마나 절박한 심리적 공황상태에 있는가를 알 만하다.

    저들은 또 과거의 어느 누구 뺨치리만치 타락했다. 권력구조는 말할 것 없고 공기업, 시민사회, 각종 집단에 떨어진 낙하산, ‘햇볕’ 뒤안길, 그리고 권력화된 과격 노조에 들러붙은 얼치기 좌파 건달들의 ‘권세+돈’ 흑막은 이미 각종 흉측한 스캔들로 세간에 불거져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은 저들의 그런 부도덕과 범죄를 어느 때인가는 반드시 추상(秋霜) 같은 정의의 법정에 세워야 한다.

    이런 해괴한 시대의 해괴한 세력을 제거하는 일은 그러나 결코 공짜로 될 수는 없다. 이 모든 반역과 병증과 타락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국민들의 그만한 헌신과 기여와 희생이 있어야 한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핵심 좌파에 제대로 끼지도 못하고 진보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막연히 ‘나는 진보’라고 자임하는 사람들을 환상에서 깨우치는 일이며, “기존 진보로는 먹고 살기가 힘들게 되었다”는 것을 ‘겪어 보고 나서야’ 겨우 느끼기 시작한 젊은 계층을 보다 확실하게 대한민국 쪽으로 끌어들이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4·19~6·10까지의 ‘민주화 운동’의 참다운 본류(本流)가 무엇인지에 대한 치열한 이론투쟁, 사상투쟁이 필요하다. ‘민주화 운동’의 본류는 대한민국 ‘건국의 이유’인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을 구현하려는 것이었지 그것을 ‘그놈’이라고 부르는 데 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그 기본 정신을 저버리지 않는 범주 안에서의 ‘진보’라야만 ‘진보’의 참된 의의 (意義)가 있다는 것을 후배들에게 분명히 말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6·10 민주화’ 20주년을 맞는 ‘병들지 않은’ 선배 세대의 마지막 소임일 것이다. ‘민주화’를 도둑질해 간 반(反)헌법 집단의 변란을 단호히 분쇄한다는 소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