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주론』으로 널리 알려진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명언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인간은 흔히 작은 새처럼 행동한다. 눈앞의 먹이에만 정신이 팔려 머리 위에서 매나 독수리가 내리 덮치려 하고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참새처럼 말이다.” 지금의 한나라당 사정을 이만큼 적확하게 지적하는 말을 찾아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가슴에 진하게 와 닿는 경구(警句)이다.

    한나라당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대선 승리라는 당면 목적지를 향하여 순항하고 있는가? 목적지에 도달하기도 전에 배가 난파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 그런 경우는 그나마 애정이 남아 있는 사람들의 얘기이고, 추잡한 장면이 보기 싫어 마음을 돌리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음을 모르고 있단 말인가? 민심이 떠나고 있는 소리가 캠프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는가?

    ‘쇠귀에 경 읽기’도 유분수지 당이 쪼개지든 말든 경선에서 그저 이기면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그것도 죽어가는 당을 살려놓았다고 자부하는 측에서 당력을 소진시키고 당 이미지에 먹칠을 하는 일에 더 열심이다. 이런 꼴을 보여주려고 당을 살렸단 말인가? 눈에 핏발이 서 있다는 말이 과언이 아닐 만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 후보를 넘어뜨리겠다는 기세이다. 나라를 살리고 국민들을 어루만지는 데 그 힘을 쓰면 안 될까? 자기들이 몸담고 있는 조직에 대한 도리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최소한의 도의성도 염치도 없는 사람들이 나라와 국민들을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이 그렇게 외치는 ‘선진화’가 이루어질까? 선진화가 물질적인 풍요 못지않게 정신적인 성숙을 의미한다고 할 때, 양심이 실종된 사람들이 이끄는 나라를 선진국이라 부를 수 있을까?

    같은 당내의 경선도 일종의 권력 투쟁이라는 점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일정 정도로 시끄러울 수밖에 없고, 자신의 강점만을 내세우는 포지티브 캠페인만으로 되지 않는 경우도 생긴다. 네거티브 캠페인이 옳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특히 당내의 선거라면 네거티브 캠페인도 은유적으로나 구호성으로 할 때만 허용될 수가 있다. 예컨대, 박근혜 후보 같으면 “21세기는 건설업의 시대가 아니다”라고 할 수가 있다. 이 정도는 애교로 봐 줄 수가 있다. 그러나 지금 박근혜 후보 진영이 벌이고 있는 네거티브 캠페인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수준의 것이다.

    ‘검증’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검증’이 아니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열 방을 쏘다 보면 하나는 걸려들겠지’ 하는 김대업 식 흑색 선전이자 인신 공격이다. 상대방으로부터 좋은 것을 배우지 않고 하필 그런 저질의 수법을 배우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자신들의 주장대로 당내에 검증위원회라는 희귀한 조직까지 두었다. 위원장은 유명한 특수 수사 전문가이다. 그런데 검증위원회를 무시하고 자신들이 직접 검증하겠다? 이것이 박근혜 후보가 말하는 ‘원칙’인가? 헌법도 시대에 맞지 않으면 바꾸어야 하는데, 경선 규정을 바꾸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원칙의 훼손이라고 원칙 운운 하더니만, 정작 자신들은 캠프 구성에 있어서나 검증 공방에 있어서나 원칙을 지키지 않고 있다. 자기한테 편리한 원칙만 지키고 불리한 원칙은 멀리하는 것이 원칙주의자 박근혜 후보의 모습인가? ‘고무줄 원칙’이 아니고서야 이럴 수가 없다.

    지난번에 언급한 것처럼 박근혜 후보 진영에는 합리적이고 훌륭한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힘을 못 쓰는 것인지, 몇몇 검객(劍客)들에 의해 휘둘리고 있다. 그 칼날이 상대를 죽일 수도 있지만, 자신들을 죽일 수도 있음을 모른 채 마구 휘두르고 있는 형국이다. 박근혜 후보 진영의 합리적이고 양심적인 분들은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 지금과 같이 당을 죽이고 경선 국면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상황을 막아내든지, 아니면 그럴 자신이 없다면 스스로 물러서야 한다. ‘내가 있을 곳이 못 된다. 정치 공부 많이 했다.’고 생각하고 철수를 한다고 해서 손가락질을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거기에 계속 몸담고 있으면 아무리 본인이 ‘아름다운 경선’을 위해 애를 썼다 하더라도 알아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좋은 칼일수록 칼집이 좋다’는 말이 있다. 똑같은 의미로 ‘좋은 차일수록 브레이크 장치가 뛰어나다’는 말도 가능하다. 칼을 함부로 휘두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브레이크 없는 질주도 위험하다. 지금 박근혜 후보 진영은 네거티브 캠페인으로 두 사람 간의 지지율 격차가 줄어든다고 생각하고 계속 이 방향으로 밀고 가는 것 같은데, 그렇게 가면 목표 지점에 도달하기 전에 낭떠러지에 떨어질 공산이 더 크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 박근혜 후보 진영에 절실히 필요한 것은 액셀레이터가 아니라 브레이크 장치이다. 누군가가 브레이크 역할을 해 주어야 한다. 자기 절제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물러서야 할 때는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한다.

    원래 박근혜 후보는 자기 절제에서 오는 ‘내면의 아름다움’이 큰 자랑거리였다. 이것이 언제부터인가 변했다. 헤어 스타일을 바꾼 것까지는 좋은 일이었지만, 당내 경쟁자에 대한 전투 모드로 바꾸면서 ‘내면의 아름다움’이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국민의 누나’로 다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직 기대감을 버리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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