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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1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정부가 '국기에 대한 맹세' 문안을 바꾼다며 여론을 모으고 있다. 정부 수립 이래 국기에 관한 규정이 고시·훈령·대통령령에 머물렀는데 지난해 12월 국기법이 제정돼 법률 차원으로 격상됐다. 이 법이 7월에 시행되는데 차제에 시행령에 들어가는 '…맹세' 문안을 시대적 변화에 맞게 수정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고치겠다는 논리가 빈약하고 방식이 허술하다. 행자부 여론조사에 따르면 75%가 '…맹세'를 유지하자고 했고 문안에 대해선 유지(44%)가 수정(42.8%)보다 약간 많았다. 유지는 청장년층, 수정은 젊은 층에서 상대적으로 높았다. 행자부 관계자는 "젊은 층에서 '조국과 민족의'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 '굳게 맹세' 같은 표현이 글로벌 시대에 맞지 않고 너무 충성을 강요한다는 느낌이라는 의견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행자부는 청와대와 협의한 결과 수정하기로 결론을 냈다는 것이다.
'…맹세'는 1972년 박정희 유신정권 때 전국적으로 시행되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권은 혹시 '…맹세'가 유신의 유산이라는 인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유신정권이 '…맹세'를 만든 데는 남북대치와 국력 총동원의 상황에서 개인보다 국가를 강조하려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유신 때 개인의 인권이 억제됐던 사실에 비춰 보면 '…맹세'의 일부 구절에 반감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정권의 그런 강조점이 있었다 해도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맹세'의 정신이 필요하다면 우리는 이를 계속되는 역사로 받아들일 수 있다. 요즘처럼 나라사랑이 희미해질 때 '…맹세'의 정신은 오히려 고양(高揚)돼야 하지 않을까.
수정을 서두르지 마라. 바꾸자는 여론이 압도적일 때 해도 늦지 않다. 행자부는 3개 수정 예시문을 만들면서 몇몇 국어학자하고만 논의했다고 한다. 이래선 안 된다. 굳이 바꾸려 한다면 철학·헌법학.교육학자 등의 광범한 의견을 시간을 갖고 들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와 인권·법치·나라 사랑 등이 모두 포함된 품위 있고 세련되며 깊이 있는 맹세를 만들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