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세가 넘은 전직 대통령인 DJ가 도를 넘은 ‘훈수 정치’를 왜 계속하는지를 잘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가 여론의 질타를 받으면서까지 여권 통합 혹은 여권 후보 단일화를 위해 직접 소매를 걷어 붙이고 있는 이유는 너무나 뻔하다. 우선, 한나라당이 집권하게 되면 자신의 업적이라고 자랑하는 한반도 평화 무드의 조성이 물 건너 갈 것이라는 우려를 함 직하다. 

    일견 그럴 수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집권한다고 해서 긴장을 조성할 리도 만무하고 설령 그런 의지가 있다 하더라도 대한민국 정부가 마음대로 그런 일을 할 수가 없다. DJ인들 그걸 모르겠는가? DJ가 그렇게 느낀다 하더라도 여론의 부담을 안으면서까지 오버 액션을 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답은 오직 하나, 한나라당이 집권했을 때 자신에게 미칠 화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DJ 정권 재임 5년 동안 부정부패 시비가 끊이지 않았었는데, 그 동안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소문이 많다. 만일 한나라당이 집권해서 자신 내지 그 측근들의 치부를 드러낸다면 그나마 남아 있던 약간의 명예마저 사그리 사라져버릴 것이라는 두려움 아니겠는가! 이것이 그가 여권 재집권 프로젝트의 설계사이자 시나리오 작가로 등장한 배경인 것 같다. 

    사실 DJ는 오래 전부터 측근들과 함께 그런 작업을 해 왔는데, 최근 들어 전면에 등장한 것이 다를 뿐이다. 여권 통합 작업이 지지부진하고, 정운찬의 낙마 등 돌출 변수가 생기며, 자신과 파트너가 되어야 할 노무현 대통령은 엇박자로 나가는 등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민망스러운 처신을 하고 있는 것이지만, DJ 본인으로서는 ‘합리적 선택’이라 할 수도 있고, 여권으로서는 정치에 관한 한 입신(入神)의 경지에 있는 어르신이 여권 통합과 재집권을 향하여 직접 진두지휘하는 것이 마음 든든할 것이다. 이에 비해 한나라당에는 그런 원로가 있는가? 한나라당의 정권 탈환을 위해 기획하고 배후에서 조종하는 지도자가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한나라당에는 아무도 없다. 원로들조차도 대부분 양대 후보 진영에서 줄을 서 버렸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양대 후보 사이의 전선이 대단히 위태롭기 때문에 더 더욱 이를 적절히 통합·조정하는 원로들의 역할이 필요한데, 안타까운 현실이다. 여권은 DJ의 뜻대로 하나의 정당으로 통합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최소한 후보 단일화를 성사시킬 것이다. 반면에 한나라당은 ‘아름다운 경선’과 ‘경선 후의 대동단결’이라는 뜻있는 당원들의 염원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기가 어려운 처지이다. 

    아마도 한나라당 후보들은 내상(內傷)을 입은 채 본선을 맞을 것이고, 그 이후 여권은 단일 후보를 내놓을 것이다. 여권은 사력(死力)을 다해 한나라당과 싸울 때 과연 한나라당은 그럴 수 있을까? 모든 당원과 지지자들이 한나라당의 정권 탈환을 위해 몸을 던질 수 있을까? 그럴 만큼 한나라당 후보들이 감동과 매력을 주고 있는가?

    DJ뿐만 아니라 여권 사람들은 정권을 잡아야 할 이유가 분명하다. ‘정권을 놓치면 안 된다’는 긴장감으로 똘똘 뭉쳐진 사람들이다. 그것이 정권을 잃었을 때 자신에게 닥칠 신변상의 위험 때문이든, 재미있는 여당 생활에 맛을 들여 다시 야당 생활로 돌아가기 싫어서이든, 아니면 순수하게 자신들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이든 그들의 재집권 의지는 대단히 강하며, 더불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정치공학에 도가 트인 사람들이다. 반면에 한나라당은 그들에 비해 권력 탈환 의지가 약하며, 권력을 잡을 수 있는 기술과 역량이 저들에 비해 떨어지는 편이다.

    한나라당에 DJ 같은 원로 설계사가 없다면, 양대 캠프에 가담하지 않은 국회의원과 당원들, 혹은 밖의 한나라당 지지 그룹이라도 양대 캠프가 일탈의 위험을 벌일 때 옐로카드를 발부하고, 나아가 12월의 본선 승리에 관한 정교한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객원칼럼니스트의 칼럼내용은 뉴데일리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