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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얘기는 안하려고 했는데… 최근에 도를 넘고 있기에 하지 않을 수 없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28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이같이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4.25보궐선거에 참패했지만 한나라당은 호남에서 두자리수 득표율을 기록하는 성과를 얻었다. 때문에 대선을 앞둔 한나라당의 호남구애는 어느 때 보다 남다르다. 당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첫 정책비전대회 장소 역시 민주화의 상징인 광주 5.18기념문화관으로 잡았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날 김대중 전 대통령(DJ)을 강하게 비판했다. 한나라당으로선 썩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웬만하면 피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다. DJ가 갖고 있는 호남의 영향력을 잘 알기에 한나라당은 그동안 그에 대한 비판을 자제해왔다. 대북정책을 비판하면서도 노무현 정권과 김대중 정권을 분리했고 햇볕정책에 무조건적인 비판에서 벗어나 공은 인정해주는 분위기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DJ의 정치개입이 점차 노골화되자 결국 한나라당은 DJ에 총구를 겨눴다. 강 대표는 "전직 대통령에 대해 말을 아껴왔는데 오늘은 김 전 대통령의 최근 발언에 대해 한 마디해야겠다"면서 포문을 열었다. 강 대표는 "(DJ가)최근 '국민이 희망하는 대선구도는 일대일 구도'라고 한다든지 '한나라당 혼자서 주먹을 휘두른다'든지 하고 있다. DJ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삼척동자도 다 알만하다."며 "굳이 반복해서 얘기하진 않겠다. 그러나 범여권의 통합을 촉구하고 야당에 대한 공개비판은 전직 대통령으로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고 비판했다.
강 대표는 "특히 지역주의 피해자로 자처했던 분인데 지역주의를 공공연히 조장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정권연장에 깊숙히 개입하려는 것 보다 초연하고 통큰 자세로 국민통합에 기여해달라"고 주문했다.
김형오 원내대표도 "(DJ는)작년 10월 목포 고향에서 '앞으로 정치에 일체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다. 훈수를 두는 것은 있을 수 있지만 최근 발언은 어떤 국민도 그런 차원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노골적으로 특정정당이나 후보에 대해 개입하고 훈수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걱정한다"고 지적했다.
김 원내대표는 최근 경쟁적으로 DJ를 찾고 있는 범여권 대선후보를 향해서도 "범여권 대선주자라는 사람들도 큰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국민을 보고 해야지 정당의 이합집산에 몸을 맡기고 전직 대통령 집앞을 기웃거리고 그의 도장을 받으려 하는 것은 문제"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DJ의)노골적인 정치발언은 훈수를 넘어 정치게 개입하고 스스로 지휘봉을 잡겠다는 것"이라며 "이는 계보정치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이고 지역감정의 부채질을 다시해 지역정치를 다시하겠다는 것으로 타개돼야 할 대상"이라고 했다.
DJ에 대한 비판은 'DJ 저격수'라고 불리는 정형근 최고위원이 마이크를 잡으며 극에 달했다. 정 최고위원은 "3김정치의 부활이 우려된다"면서 "(DJ)본인이 지역주의 피해자라고 했으나 그는 지역주의의 화신 그 자체"라고 맹비난했다. 정 최고위원은 "김 전 대통령은 언제까지 호남 지역민들을 볼모로 삼을 것인가? 4월 보궐선거에서도 민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둘째 아들을 국회의원까지 만들었는데 이제 그만하라"고도 했다.
특히 정 최고위원은 DJ를 찾는 범여권 주자들에게 "여권 대선주자들에게 호남지역은 안중에도 없다. 김 전 대통령의 재가만 있으면 호남민심은 자연스레 따라올 것으로 믿고 있는데 지역주민의 원망과 희망이 뭔지 귀기울이지 않고 DJ 입만 쳐다보려하느냐"고 따진 뒤 "이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후퇴고 시대를 거꾸로 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어떻게 DJ가 호남일 수 있느냐? 과거 DJ가 호남이었다 해도 20년이 지난 후에도 'DJ=호남'이라면 이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또 DJ의 유일한 상품이라 할 수 있는 햇볕정책에 대해서도 맹비난을 쏟았다. 정 최고위원은 "햇볕정책은 평화와 번영을 위한 수단이지 도그마가 아니다. 햇볕정책에 대한 공과를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나 단기적으로는 득보다 실이 많은 정책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남북관계의 긴장완화라는 진전도 있었지만 핵무기 개발과 경제적 궁핍, 세계 최악의 인권상황, 증가하는 탈북자는 그대로다. 특히 김대중 식 햇볕정책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남북정상회담 댓가로 현찰 5억불을 주고 핵무기 개발을 묵인하고 김 전 대통령이 사실상 북의 대변인 역을 자임하는 행태가 그것"이라며 "햇볕정책은 수단이지 계승을 하고 후계자가 되겠다는 것은 김정일에게 정권을 물려주겠다는 정신나간 것에 불과하다"고 맹비난한 뒤 "그렇게 대선에 관여하고 싶으면 대선에 직접 나서 국민의 심판을 받는 것이 더 당당한 처사"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