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21일자 오피니언면 '시시각각'에 이 신문 김두우 논설위원이 쓴 <'마음을 움직이는 정치`가 없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사실 정치인에게 많은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들은 도덕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라는 이들은 종교인이나 시인이 되고, 앞뒤가 똑 맞아떨어지는 논리를 추구하는 이들은 학자의 길을, 이념이나 사상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이들은 사상가나 철학자나 혁명가의 길을 간다. 오히려 이렇게 이해하는 게 속 편하다. 정치인은 평범한 이들보다 훨씬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권력 욕구가 강한 사람들이라고. 몇 년 전 작고한 김윤환 전 신한국당 대표는 "정치인의 첫 번째 관심사는 다음 선거에서의 당선, 두 번째는 정치자금, 세 번째는 당직·각료직 등의 자리"라고 했다. 이 기준에 따르자면 국익이나 공익이 네 번째에라도 든다면 그는 그런대로 괜찮은 정치인이다.

    그래도 그렇지 2007년 5월 한국 정치판의 모습은 좀 심하다. 눈 뜨고는 차마 보지 못할 지경이다. 누구도, 단 한순간도 감동과 희망과 즐거움을 국민에게 주지 못하고 있다. 2002년 대선 때의 일이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김원기 의원(17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이 노무현 캠프에 몸담았다. 당시의 정치적 무게로만 본다면 뜻밖의 선택이었다. 그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기택 대표 체제의 민주당 시절이었다. 최고위원들 간에 당직 배분을 놓고 나눠먹기를 하고 있었다. 다른 최고위원들이 자기 사람을 하나라도 더 요직에 심으려고 혈안이 돼 있을 때 노무현은 자기 몫을 포기하더라. 그때 '참 괜찮은 정치인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선에 나서겠다는 희망자가 두 자리 숫자를 헤아린다. 도덕성과 균형감각과 행정능력과 이론에서 앞선 이도, 경제를 좀 알고 국정운영의 노하우에서 앞선 이도 있다. 그러나 그 많은 후보들 중에서 관전의 재미나 감동을 주는 이는 없다. 당내에서 자신을 흔들어대자 '차라리 탈당해 개혁당 후보로 나서겠다'고 펄펄 뛰고, 후보 단일화에 공헌한 정몽준씨가 '권력 반분(半分)'의 계약서를 요구하자 "웃기지 말라"며 거절한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의 지지층이 등 돌릴 줄 뻔히 알면서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밀어붙이고, 역대 정권에서 손대려 하지 않았던 인기 없는 연금개혁을 추진하는 것이 '바보 노무현'의 매력이다. 그래서 지지도가 10%에서 30%로 급상승한 것이다. 지금 대선 주자 중 누가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 과연 지금 시점에 노무현이 대선에 나섰다고 가정한다면, 그의 많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를 이길 수 있는 후보가 있을지 의문이다.

    국민은 이해도 못할 희한한 경선규칙을 놓고 당이 깨져라 싸우고, 그러다가 적당히 절충해 놓고는 서로 "내가 양보했다"고 큰소리 친다. 거기에 무슨 '큰 정치(이명박)'가 있으며 '원칙(박근혜)'이 있는가. 그저 기세싸움과 잔머리의 잔해만이 가득할 뿐이다. 국민이 그 웃기는 싸움에 아무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지지율 조사에서 변화가 없었다는 게 그 증거다. 범여권에서 진행 중인 '대연합'이란 것도 말장난이다.

    알맹이는 그대로 둔 채 포장만 바꿔 국민의 눈을 속이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백번 양보해 그냥 앉아서 죽기만 기다릴 수는 없으니 발버둥 치는 것이라 치자. 누구는 국정 실패의 책임자여서 안 되고, 누구는 친노 인사여서 안 된다는 건 또 뭔가. 국민이 보기에는 열린우리당이나 통합신당파나 민주당이나 도토리 키 재기일 뿐인데 말이다. 경의선·동해선 시범운행에, 경선 출마를 선언한 김원웅 의원은 태우면서 '대선 후보는 배제'라며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빼는 현 정권의 속좁음도 짜증을 더한다.

    사람을 움직이는 데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이익이나 감동을 안겨주는 것이다. 리더십과 감동은 손해볼 줄 아는 데서 생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정말이지 감동에 목마르다. 큰 정치, 감동을 주는 정치는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런 시늉이라도 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