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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9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창균 정치부 차장이 쓴 '승부는 큰 흐름으로 갈린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이명박, 박근혜 두 사람이 다툰다는 경선규칙 문제가 도대체 뭐야?” 요 며칠 새 자주 듣는 질문이다. 무엇 때문에 티격태격하는지 내용을 모르겠다는 것이다. 쟁점은 경선에 여론조사 인원을 반영하는 방식이다. 박근혜 전(前) 한나라당 대표는 ‘전체 선거인단 투표수의 20%’로 하는 현행규칙 고수입장이고,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4만명으로 고정’하자는 입장이다. 보통사람들에겐 암호처럼 들린다. 워낙 제도가 복잡해서 지면에 설명해 놓아도 “학술논문을 읽는 느낌”이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5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민주당 경선 때 도입했던 ‘선호투표제’ 얘기다. 선거인단이 주자 한 명만 찍는 것이 아니라 “제일 선호하는 주자는 A, 두 번째는 B, 세 번째는 C”식으로 투표했다. A 주자가 경선도중 사퇴하면 이 선거인의 표는 두 번째 선호주자인 B 몫이 되는 방식이었다. 이것 역시 독자를 이해시키려 노력했지만 헛일이었다.
당시 신문을 뒤져보면 ‘선호투표제, 여(與) 경선 최대변수로’ ‘선호투표제 노무현에게 왜 유리한가’ 같은 제목이 눈에 띈다. 선호투표제는 선두주자를 뒤쫓는 후발주자들에게 희망을 줬다. ‘첫 번째 선호’표를 적게 받아도 ‘두 번째, 세 번째 선호’표를 많이 받아 놓으면 막판 역전이 이론적으로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경선이 시작되자 선호투표제는 전혀 변수로 작용하지 않았다. 16개 시·도 경선 중 두 번째였던 울산에서 노 후보가 1위로 나서자 ‘이인제 독주’ 무드에 제동이 걸렸다. 그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노 후보가 이 후보를 처음으로 앞서는 결과가 나왔다. 선거판이 술렁였다. 그리고 세 번째 광주경선에서 노 후보가 이 후보를 다시 따돌렸다. 거기서 승부의 흐름이 완전히 방향을 틀었다. 이후 열세 차례의 경선은 통과의례에 불과했다. 먼저 탈락한 주자의 두 번째, 세 번째 선호를 따져 볼 필요조차 없었다.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은 50개주별로 제각각 다른 경선 규칙을 적용한다. 각주 지방당이 정하기에 따라 경선 일정도, 경선 규칙도 바뀐다. 어느 주는 당원들끼리 후보를 뽑고, 어느 주는 일반국민참여 경선을 한다. 또 어느 주는 경선에서 한 표만 이겨도 그 주에 배당된 선거인단을 독식하는가 하면, 어느 주는 득표율에 비례해서 선거인단을 배정한다. 주자입장에선 당연히 유·불리 문제가 따른다. 그렇다고 경선 규칙에 시비를 거는 주자는 없다. 미 합중국 대통령을 선택하는 것은 민심의 흐름이며, 각 주의 세세한 경선 규칙이 그 흐름을 바꿀 수는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금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는 ‘여론조사 20% 반영’과 ‘여론조사 4만명 반영’ 문제를 놓고 생사가 걸린 것처럼 싸우고 있다. 모의 실험을 해 보니 두 제도 차이에 따라 득표율은 4%까지 왔다 갔다 한다. 당사자 입장에서 “만약 그 차이 때문에 승부가 갈린다면…”이라고 생각하면 머리털이 서는 심정일 것이다.
그러나 여론조사 반영인원이 바뀌는 것에 따라 득표율 차가 4% 벌어지는 것은 현재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 간의 지지율 차가 크기 때문이다. 이런 지지율 차가 유지되면 박 전 대표가 주장하는 대로 규칙을 유지해도 이 전 시장의 우세는 흔들리지 않는다. 반대로 지지율 차가 급속하게 줄어들면 여론조사 인원을 많이 반영하건, 적게 반영하건 승패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결국 선거의 대세는 유권자의 마음이 흘러가는 큰 물줄기에 의해 갈리는 것이다. 선거 규칙은 그런 흐름이 거쳐가는 물길에 불과하다. ‘여론조사 20% 반영’이니 ‘여론조사 4만명 반영’이니 하는 암호풀이에 따라 21세기 대한민국을 이끌 지도자의 얼굴이 바뀔 리는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