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8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7일 “대표 자리를 걸고 정치적 양심과 대의명분에 따라 대선 후보 경선 룰의 중재안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내 중재안은 대법원 선고와 같은 효력을 지닐 것이며 더 이상의 수정은 없고 끝까지 밀어붙이겠다”고 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당 대표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경선 룰 분쟁의 해결사를 맡고 나선 것이다.

    강 대표는 국회의원 5선에 한나라당의 여야 시절 주요 당직을 두루 거친 중진이다. 그런데도 그가 국민 머리에 ‘정치인 강재섭’이란 뚜렷한 기억을 심어준 적은 별로 없다. 지난해 7월 한나라당 대표로 뽑히고서도 마찬가지였다. 강 대표는 이·박 두 진영이 검증과 경선 룰 문제를 놓고 시도 때도 없이 멱살잡이를 할 때 양측에 끌려 다니기 바빴다. ‘경선 관리용 대표’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하긴 소속 의원 거의 전부가 대표 얼굴보다는 이·박 두 예비 후보 얼굴을 올려다보며 ‘앞으로 나란히’를 하고 있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4·25 재·보선 뒤에는 참패의 원인을 그에게 떠넘기는 바람에 대표 자리를 내놓을 뻔했다.

    이런 강 대표가 이·박 두 사람이 사활을 걸고 달려들고 있는 경선 룰의 중재안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대표 취임 이후 그가 처한 상황과 그가 걸어온 길을 보면 자기 자신을 ‘정치 시험대’에 올려놓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 강 대표를 둘러싼 당내 정치 지형은 험악하다. 얼마 전까지 강 대표 유임을 주장하던 박 전 대표 진영은 경선 룰 문제에 대해선 한 글자도 고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강 대표에게 의심의 눈초리까지 보내고 있다. 그렇다고 강 대표가 내놓은 안을 이 전 시장측이 받아들인다는 보장도 없다. ‘그걸 중재안이라고 내놓았느냐’고 내칠지도 모른다.

    강 대표는 지금 정반대로 내달리는 두 말의 머리를 잡아당겨 한 방향으로 몰고 가야 하는 마부 처지다. 웬만한 정치력으로선 버텨내기 힘든 일이다. 마차가 둘로 쪼개지면 당이 주저앉는다. 그 순간 10년을 별러 왔던 오는 12월19일의 승리 다짐 역시 물 건너간다. 배수진을 칠 수밖에 없다. 강 대표로선 정치생활 20년 만에 ‘진짜 정치’에 데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