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일보 7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백화종 편집인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분위기가 참 좋다. 입이 째지려 한다." 지난 주 노무현 대통령이 한 종교행사에서 한 말이다. "운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된 고비는 넘은 것 같다"는 말이 이어졌다.

    아닌 게 아니라 정치권에서는 요 얼마 사이에 노 대통령으로서는 '입이 째질 만한 일들'이 거푸 일어났다. 10%대에 머물던 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덕인지 30%대로 뛰었고, 4·25 재·보선에서는 미운 한나라당이 오랜만에 참패했다. 여론조사에서 3위와는 엄청난 격차로 지지율 1, 2위인 한나라당의 대선 예비주자 이명박 박근혜씨가 갈라서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올 만큼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다. 노 대통령이 "경제 공부 좀 했다고 경제 잘하는 게 아니다"며 견제했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은 대선 포기를 선언했다. (구)여권을 포함한 반(反)한나라당 정치세력 중에 뚜렷한 대선 주자가 떠오르지 않는 것도 노 대통령으로선 미상불 기분 나쁜 일은 아닐 터이다. 반한나라당 주자를 결정하는 데 자신의 비중이 그만큼 더 커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런 여러 가지 호재로 노 대통령의 기분이 '업'돼서인지 한동안 뜸하던 그의 정치적 발언이 다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한나라당, 열린우리당, 재야 가릴 것 없이 그럴 듯한 대선 예비 주자들은 모두 그의 전방위 무차별 공격 대상이다. "대통령의 낮은 인기로 반사이익만 챙긴다"는 등의 말로 이명박 박근혜씨를, "당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도 통합 노래만 부른다"는 말로 정동영 김근태씨를, "경선에 불리하다고 당을 뛰쳐나가고"라는 말로 손학규씨를 도마 위에 올렸다.

    개헌 발의 의사 철회 이후 정치적 언행을 자제하던 노 대통령이 이처럼 정치의 중심에 진입하려는 것은 물론 못말리는 그의 천성도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7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대선과 1년 미만 남은 총선을 염두에 둔 그의 정치적 구도를 더 큰 이유로 보아야할 것이다.

    그 정치적 구도란 우선 지난번 자신의 당선에서도 보듯 지금의 대세라는 건 큰 의미가 없으며, 판세는 앞으로 7개월 동안 몇 번이라도 뒤집힐 수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더군다나 위에서 본 대로 자신에 대한 지지율이 오르고, 지난번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한 데다 한나라당의 유력 주자들은 갈라설지도 모를 만큼 갈등을 빚고 있는 등 호재들이 속출하고 있다. 게다가 반한나라당 세력들은 반노무현파가 많다 하나 지리멸렬 오합지졸이어서 자신의 대통령이라는 프리미엄과 '소수지만 잘 훈련된' 자신의 세력을 활용하면 반한나라당 세력을 묶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여 유력한 대선 후보를 낼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또 설령 대선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 해도 그 세력으로 내년 4월 총선에서 제1야당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사수 의지(?)를 거듭 밝히고 이병완 전 비서실장 등 현 정권의 청와대 및 각료 출신을 중심으로 '참여정부평가포럼'이 구성된 것도 이러한 구도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

    노 대통령의 이 같은 정국 구도는 그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의기투합할 경우 상당히 높은 실현 가능성을 갖게 될 것이다. 또 두 사람이 의기투합할 가능성 역시 낮지 않다. 아직도 반한나라당적 진보 성향의 정치세력 및 유권자들과 호남 사람들에겐 두 사람의 영향력이 거의 절대적이다. 또 두 사람은 한나라당이 집권하는 걸 결코 원치 않을 것이며, 그래서 반한나라당 후보 단일화를 추진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두 사람의 생각이 다를 경우 노 대통령은 독자적으로는 세다운 세를 형성하지 못해 그의 정국 구도도 신기루가 될 확률이 높다. 진보 세력의 계속 집권 가능성 또한 그만큼 낮아질 것이고. 이번 대선 관전 포인트 중의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