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8일자 오피니언면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가 쓴 '네오콘의 실패와 한나라당의 방황'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아직도 몇몇 우파 분석가들은 인정하려 하지 않지만, 지난 2·13 합의는 김정일의 굴복이 아니라 부시 행정부의 변질과 양보가 있었기에 가능한 사건이었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과의 양자회담 수용이라는 방법론적 차원을 넘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북핵을 폐기한다’는, 이제껏 견지해 온 원칙마저 훼손하며 김정일과 타협하였다. 이러한 극적 전환의 배경에는 이라크정책 실패와 작년 11월 중간선거 패배로 상징되는 네오콘 외교의 실패가 자리잡고 있다.돌이켜보건대 네오콘 외교는 현실주의에 근거한 전통적인 미국 외교 노선과는 완연히 차별화되는 새로운 실험이었다. 선악 이분법에 기초해 피아를 구별하고 악의 무리를 제압한다는 도덕주의와 유엔 등을 통한 국제협력보다 독자 행동을 선호하는 일방주의는 결국 이렇다 할 외교적 성과도 올리지 못한 채 미국을 ‘초대받지 않은 제국’으로 전락시켰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반동의 물결이 거세다. 이라크에서 잃어버린 것을 북한에서 되찾겠다는 보상심리가 북한에 대한 이례적 관대함으로 나타나고 있다. 네오콘과 의기투합했던 일본의 아베 정권은 충격에 휩싸였다. ‘제2의 닉슨 쇼크’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해 볼 때, 부시는 자신의 임기 중에 북핵 해결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열매를 따먹으려는 것 같다.
상황이 이처럼 혁명적으로 변하다 보니 한국에서 수권 야당을 자임하는 한나라당이 대북정책을 재검토하겠다며 갑론을박을 시작했다. 그런데 모양새가 영 좋지 않다. ‘낡은 반공주의 대 아류 햇볕정책’이라는 오답 택일형 구도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대선을 겨냥한 정책 포퓰리즘이라는 비판도 거세다.
자고로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일수록 일희일비하지 말고 정도를 가라 했다. 2·13 합의 이후의 사태 전개에서 한나라당이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바로 불철저한 핵 폐기 움직임이다. 2·13 합의의 최대 특징은 9·19 공동성명에서 폐기 대상으로 명시됐던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프로그램’에서 핵무기가 슬쩍 빠졌다는 점이다. 더욱 요상한 것은 작년 10월 9일의 북한 핵실험이 사실상 실패였다는 미 정보당국의 정보 수정이다.
이 같은 변화는 무엇을 암시하는가? 김정일 정권은 이미 핵 보유국 선언을 했다. 부시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에 관심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 핵이 방어용이라고 했다. 이 3자가 결합하면 핵 문제의 적당한 봉합과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정치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한술 더 떠 종전선언을 시간이 걸리는 평화체제 구축과 분리하여 2007년의 정치 이벤트로 만들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우파의 반미나 독자 핵 개발 주장은 하책이다. 햇볕정책 따라 하기는 ‘이회창의 촛불’이 될 뿐이다. 이럴 때일수록 한반도 비핵화를 견결히 외쳐야 한다. 불완전한 핵 폐기 속에서 평화를 추구하는 유핵무전이 아니라 핵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통한 평화, 즉 무핵무전을 주장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햇볕론자들의 ‘전쟁 대 평화’라는 유치한 이분법을 물리치고 ‘무핵무전(튼실한 평화) 대 유핵무전(불안정한 평화)’이라는 새로운 구도를 창출할 수 있다.
2·13 합의를 이끌어낸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는 2002년 9월 고이즈미의 평양행을 기획한 다나카 히토시 당시 일본 외무성 아태국장을 연상시킨다. 다나카는 납치 고백과 국교 정상화의 교환으로 양국관계를 급진전시키려 했으나, 납치 고백 부메랑과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핵개발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지금 힐에 대한 워싱턴의 여론이 좋지 않다. 반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그런지 한나라당의 지그재그 스텝은 더욱 불안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