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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8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창균 논설위원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제3지대’라는 말이 정치권의 유행어처럼 됐다. 손학규 전(前) 경기지사가 한나라당을 탈당하던 날 열린우리당 의원은 “손 전 지사가 제3지대에서 신당을 만들면 의원 50명이 몰려들 것”이라고 했다. 손 전 지사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제3지대 주도권을 놓고 쟁탈전을 벌인다는 말도 나온다.
‘제3’에는 사람들이 잘 아는 첫째, 둘째와 다른 새로운 무엇이란 뜻이 담겨 있다. 2005년 11월 열린우리당 소속이었던 염동연 의원은 “제3지대로 나가 여권 통합에 힘쓰겠다”고 했다. 이때 제3지대는 열린우리당도 민주당도 아닌 중립지대다. 2006년 2월 열린우리당 전당대회를 앞두곤 김혁규 의원이 제3지대론을 내걸었다. 당내 양대 계파인 정동영계, 김근태계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중립세력 양성론이었다.
요즘 정치권에서 떠도는 제3지대론은 ‘비(非)한나라당, 비(非)여권(與圈)’에서 12월 대선 후보가 나와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주장을 펴는 사람들은 열린우리당, 통합신당파, 민주당 등 범여권 의원들이다. 자신들이 범여권이면서 ‘여권이 아닌 후보’를 찾고 있다. 그렇다면 여권 후보는 따로 정해져 있다는 뜻인가.
이런 궁금증을 풀 실마리가 정 전 총장의 조언자라는 김종인 민주당 의원으로부터 나왔다. 김 의원은 월간조선(4월호)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대선에선 한나라당도 열린우리당도 아닌 제3지대 후보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정 전 총장이 바로 제3지대 후보라는 뉘앙스다.
“본인이 제3지대 후보라고 해도 국민들은 범 여권 후보로 보지 않겠느냐”는 의문이 든다. 김 의원은 이에 대해 “그러니까 열린우리당 후보가 따로 출마해 줘야 한다. 그 사람이 노 대통령의 실정(失政)을 안고 가야 한다”고 했다.
같은 진영에서 후보가 갈리면 불리하다는 것이 선거의 통설이다. 그런데 김 의원은 “이번 대선은 예외다. 통합 여권 후보가 나오면 절대로 한나라당을 꺾을 수 없다”고 했다.
김 의원 말속에 제3지대 후보론이 녹아 있다. 요약하면 “이번 대선에선 노 대통령과 같은 편으로 인식되는 후보는 절대 이길 수 없다. 따라서 열린우리당은 끝까지 따로 남아 ‘노무현표 후보’를 내줘야 한다. 그래야 범여권의 다른 후보가 ‘제3지대’라는 간판을 달고 노무현 정권과 차별화를 하면서 한나라당 후보와 싸울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고 보니 정 전 총장이 열린우리당 오픈 프라이머리에는 절대 참가 않는다고 했던 이유가 짐작이 된다.
김 의원 바람대로 ‘노무현표 후보’는 나올 것인가. 노 대통령은 올 초 “고건 총리 인선은 잘못이었다”고 했다. 이 말은 범여권 선두 주자였던 고 전 총리에게 치명타가 됐다. 고 전 총리는 그 얼마 후 대선 불출마 선언을 했다. 노 대통령은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을 탈당해 범여권 선두 주자로 나서자 “경선에서 불리하다고 탈당하는 건 보따리 장수 같은 정치”라고 공격했다. 노 대통령은 경제학 박사인 정 전 총장에 대해서도 “경제 공부 좀 했다고 경제정책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범여권 주자가 떠오를 때마다 견제구를 날리고 있다. 그래서 “노 대통령이 따로 마음에 두고 있는 후보가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노 대통령은 그 후보를 구심점으로 자신의 정치세력을 유지해나갈 생각이라고 한다. 대선 승패보다 거기에 더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한편에선 노 대통령의 뜻을 이어갈 후계자를, 또 한편에선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심판을 홀로 뒤집어 쓸 희생양을 필요로 한다. 여권의 중심과 외곽에서 서로 다른 이유로 ‘노(盧)의 남자’를 부르고 있다. 두 가지 흐름이 만나면서 실제 ‘노의 남자’가 등장할 것인지, 그것이 정권 재창출에 도움이 될 것인지, 혹시 두 흐름은 원래부터 하나였던 것은 아닌지…. 수수께끼는 계속 꼬리를 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