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에 현금지원은 안된다'는 정부 원칙을 노무현 정권이 깨버렸다. 이산가족 상봉을 이유로 정부는 사상 처음 북한에 현금 40만 달러(약 4억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노무현 정권이 빠르게 호전되는 남북관계를 통해 지금의 불리한 대선국면을 전환시키려한다는 의혹을 던지고 있는 한나라당은 이번 조치에 강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북한이 2·13합의를 이행하기도 전에 노무현 정권이 북한 지원을 너무 서두르고 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노 정권의 이런 움직임이 결국 대선을 겨냥한 전략적 차원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갑작스런 방북과 곧바로 이어진 현금지원 등 일련의 흐름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조건 비판만 하기에는 고민도 크다. 자칫 '반통일 반평화'세력으로 잘못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노 정권이 노리는 것도 바로 이 점이라는 것을 아는 이상 반대만 하기엔 부담이 큰 상황이다. 12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소속 의원들이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요구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정부가 처음으로 북한에 현금을 지원한다는 소식을 접한 뒤 열린 13일 한나라당의 첫 공식회의에서는 이런 분위기가 고스란히 연출됐다.

    김형오 원내대표는 인사말에서 "오늘은 평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다"며 말문을 연 뒤 "오늘은 2·13합의 한달째 날"이라며 "북핵폐기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북미간 관계 정상화가 빠르게 진전되는 점은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53년간 남북평화에 기여한 휴전선이 이제는 평화선이 되도록 한나라당이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황우여 사무총장은 "한나라당도 유연한 대북관계를 지지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북에 대한 현금지원에 대해서는 강한 우려를 표출했다. 제2정조위원장인 송영선 의원은 "이 정권을 결코 북한에 대등한 행동을 요구하지 않는다"며 "김정일이 2.13합의를 이행하기도 전에 선뜻 현금을 지원하는 것이 진정 노무현 정부가 북한의 핵폐기를 바라는 것이냐"고 따졌다. 송 의원은 이 전 총리의 방북과 대북현금지원 합의시기가 일치하는 점에도 강한 의혹을 나타냈다. 그는 "현금지원합의가 이 전 총리의 방북 시기와 일치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며 "우리가 2.13합의를 먼저 이행한 꼴이고 남북정상회담을 돈주고 사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하면 그에 상응하는 인도적 지원을 우리도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며 납북자와 국군포로 송환 등의 요구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 의원은 "지원은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라 대등하게 이뤄져야지 현금지원이 정치적 거래로 이용돼서는 결코 안된다"며 "이런 원칙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일방적인 지원은 한나라당 집권을 반대하는 김정일 정권에 동조하는 반국가적 반통일적 행위"라고 못박았다.

    황우여 사무총장도 "한국인 사무총장이 있는 유엔이 유엔계획 개발프로그램을 통해 제공하던 대북현금지원조차 중단하고 감사를 실시하려고 하는데 이런 흐름이나 규정의 취지를 살리는 의미에서 정부는 현금지원에 앞서 다시 국제 사회와 논의해 여러 위험성에 대한 방지조치 후 물품지원 원칙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산가족 상봉이 최대과제지만 현금지원은 재고해야 하고 정치적 의혹은 말끔히 제거한 뒤 남북관계의 기본틀에서 움직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나경원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이 전 총리가 어제 귀국했고 여러가지 설명을 종합해 볼 때 정상회담 논의가 깊숙히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며 한쪽으로는 연막을 치고 한쪽으로는 연기를 피우는데 마술쇼 하듯 어느날 갑자기 정상회담 얘기하지말고 투명하게 국민에게 공개하라"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