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6일자 오피니언면에 언론인 류근일씨가 쓴 <'노무현·DJ·김정일' 대 한나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한나라당의 대선 주자들은 ‘2007 대선’의 주제가 무엇이며, 자신들의 주적이 누구라고 규정하는가? 지금으로서는 박근혜씨의 주적은 이명박씨인 것 같고, 이명박씨의 주적은 박근혜씨인 것 같으며, 손학규씨의 주적은 한나라당 안의 ‘냉전수구’ 세력인 것 같아서 묻는 말이다. ‘2007 대선’의 중심 테마는 엄연히 “좌파정권 종식이냐, 좌파정권 연장이냐”의 결전이어야 하는데도, 그들은 그런 주제의식과 그런 주적 개념을 잊은 맹목적 권력투쟁에 빠져드는 모습이다.

    이에 비해 북한의 김정일이 ‘2007 대선’ 투쟁의 주적을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지는 북의 노동신문 사설에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친미보수 세력의 발악적인 진출을 저지시키지 못하면 인민들이 피로써 쟁취한 그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 올해의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친미반동 보수 세력을 결정적으로 매장해 버리기 위한 투쟁을 더욱 힘있게 벌여 나가야 한다.” 한 마디로 한나라당 등 모든 비(非)좌파 세력을 ‘친미반동’ ‘민족반역’으로 규정해서 없애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데도 한나라당 사람들은 자기들을 ‘매장’하겠다는 김정일보다도 당내의 경쟁 상대방을 더 나쁜 주적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김정일의 이런 움직임과 때를 같이해서 김대중씨는 최근 “(범 여권이) 단일한 통합정당을 만들거나 최소한 선거연합을 이뤄내 단일후보를 내세우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 “전통적 지지기반을 복원해야 한다”면서 ‘반(反)한나라당 지역연합’의 부활을 역설한 바도 있다. 최근엔 민주당 배기운 사무총장은 한 라디오 ‘시사자키’에 출연해서 “한나라당에 맞설 강력한 당이 필요한데,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 역할을 민주당이 해줄 것을 기대하고 계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추진하는 방향과 DJ가 생각하고 계시는 민주당 중심의 새로운 당의 방향이 일치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말은 DJ가 한나라당 등 ‘비(非) DJ 계열’의 득세를 막기 위한 전선구축의 대부(代父) 역할을 해줄 것을 희망한다는 뜻이 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선거관리 중립내각’ 요구는 ‘독재정권의 유산’이라면서, 한나라당 후보들을 ‘역사퇴행적’ 인물이라고 지칭하는 등, 현직 대통령으로서 반(反)한나라당적 선거개입 발언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처럼 김정일, 김대중, 노무현 세 인물의 주적관(觀)은 한나라당을 겨냥하고 있는데도 한나라당 사람들은 이에 무반응인 채 “우리의 주적은 당내에 있다”는 식의 ‘전선(戰線) 착시증’에 빠져들고 있다. 당내 투쟁은 물론 ‘필수적인 만큼’은 하게 되어 있고, ‘반드시 거쳐야 할 만큼’은 거치게 되어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 너무 정신 없이 몰입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좌파정권 종식이냐, 그 연장이냐”의 본래의 주제가 실종 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 점에서 한나라당 사람들은 좌파정권 종식보다 어느 한 개인을 대통령 후보로 만드는 것을 더 상위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 그것을 위해서는 김정일과 그 공조 세력보다 당내 경쟁자를 더 큰 주적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1950년대 야당 대통령 후보 경합 때 조병옥 박사는 “장면 박사에게 양보할 용의가 있다”고 선언했다. 정권교체의 대의를 위해서는 당내 이전투구를 하느니, 백의종군하겠다는 대인적인 풍모였다. 상대방이 이렇게 나오자 장면 박사도 “그래, 내가 먹겠다”라고 할 수가 없었고, 후보 자리는 결국 조병옥 박사에게 돌아갔다. 이에 비해 오늘의 한나라당 방식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한나라당 각파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바’를 작심하고 하겠다는 것을 시비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와중에서 ‘2007 대선’ 본연의 주제가 희석되고 있는 점을 환기하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