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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8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창균 논설위원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여권(與圈)의 대선 분위기를 띄워 달라니, 내가 치어리더냐.”
강금실 전 법무장관이 지난 주에 한 말이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여권에서 불이 꺼져 가니 나를 불쏘시개로 쓰려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 여권의 경선판은 너무 썰렁하다. 사람들 시선은 온통 한나라당 주자들에 쏠려 있다. 그럴 만도 하다. 여당 내 선두주자인 정동영 전 대표의 지지율이 3%에서 왔다 갔다 한다. 나머지 주자들은 1%도 될까 말까다. 그러니 빅3 주자의 지지율 합이 70%가 넘는 한나라당 경선판과 흥행 경쟁이 될 리 없다.
여권 경선판은 원래부터 열기가 신통치 않았다. 거기에 찬물까지 끼얹은 것이 고건 전 총리의 불출마 선언이었다. 고 전 총리는 한때 30%가 넘는 지지율로 여야 전체에서 1위였다. 퇴장 직전까지도 15% 내외 지지율이었다. 여권 선거판의 뼈대나 다름없던 고 전 총리가 훌쩍 떠나고 나니 여권 운동장은 텅 비어 보인다.
고 전 총리가 잔류했다면 결국 여당 후보가 됐을까. 다른 여당 주자들에 비해 지지율이 훨씬 높았으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당 주류 세력이 고 전 총리에게 기대한 역할은 ‘여당 후보’가 아니었다.
여당 중진 의원은 오래 전부터 사석에서 “고 전 총리를 꺾는 사람이 범여권 후보가 될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고 전 총리가 퇴장하던 날 열린우리당의 고위 관계자는 “고건이라는 디딤돌이 사라진 점이 여권에 큰 손실”이라고 했다. 여당 사람들은 고건 전 총리를 ‘누군가 여당 후보가 되기 위해 딛고 올라서야 할 대상’으로 꼽고 있었다는 얘기다.
역대 대선에서도 디딤돌 역할을 맡은 주자들이 있었다. 2002년 대선때 노무현 민주당 후보는 10월말까지 10%대 지지율로 3위에 처져 있었다. 도저히 자력으론 회복을 기대할 수 없었다. 노 후보는 2위로 앞서가던 정몽준 의원과의 단일화에 도박을 걸었다. 그리고 성공했다. 정 의원이 촉매 역할을 하면서 노 후보 지지율엔 화학적 변화가 일어났다. 노 후보는 그 핵융합 에너지에 힘입어 대선에서 승리했다.
1997년 대선때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두 아들의 병역기피 의혹 때문에 10%대 지지율로 곤두박질쳤다. 승산 없는 3위였다. 이 후보는 4위였던 조순 (꼬마)민주당 대표와 단일화를 이뤘다. 이 후보는 그 시너지 효과로 2위로 도약하면서 막판 근접전을 이끌어 냈다.
만일 고 전 총리가 선거판에 남고, 여당내 누군가가 고 전 총리를 경선에서 꺾었다면 그 주자는 단숨에 지지율이 껑충 뛰었을 것이다. 그래서 야당 후보와 한판 승부를 겨룰 동력을 얻었을 것이다. 그런데 고 전 총리가 이런 ‘임무’를 완수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정치판을 떠나 버린 것이다.
그래서 여권 사람들은 ‘고건의 대역(代役)’을 급하게 찾아 나섰다. 일단은 여권의 바깥 동심원에 위치한 강 전 장관, 정 전 총장을 노크하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이 희생타를 자임한다 하더라도 2% 부족하다. 지금 두 사람의 지지율은 1% 내외다. 여당 선두주자의 3% 지지율에 화학적 변화를 주려면 덩치가 비슷하거나 큰 촉매가 필요하다.
그래서 여권은 적장(敵將) 중 한 명인 손학규 전 경기지사에게까지 눈독을 들이고 있다. 정당정치의 기본예절에 어긋나는 발상이다. 여권 사람들은 “손 전 지사는 우리와 정체성이 맞는다”고 합리화한다. 실은 손 전 지사의 5%를 살짝 넘는 지지율이 구미에 당기는 것이다. 여당 주자보다 다소 앞서 가는 외부 주자를 홈 링에 불러들여 꺾는다면 ‘불쏘시개’ 효과를 노릴 수 있다는 계산이다.
요즘 여권 주변에선 애타는 호객 소리가 들린다. “디딤돌이나 불쏘시개, 치어 리더를 찾습니다. 누구 희생타가 돼 주실 분 안 계신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