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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6일자 오피니언면 '조선데스크'란에 이 신문 주용중 국제부 차장대우가 쓴 '부시와 노무현'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23일 국정연설은 꾸밈없고 실용적이었다. 지지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호주 신문 ‘더 오스트레일리안’의 그렉 세리단(Sheridan) 국제부장이 25일 쓴 칼럼의 한 구절이다. 실제로 부시 국정연설이 끝난 직후 CNN이 퀵폴(quick poll)을 했더니 “매우 긍정적”이 41%, “어느 정도 긍정적”이 37%였다.
이는 추락할 대로 추락한 부시의 요즘 지지도를 생각하면 놀랄 만한 일이다. 며칠 전 뉴욕타임스는 부시 지지도가 28%까지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2008년 대선의 유력 주자들은 부시가 자신들을 지지한다고 할까봐 떨고 있다’는 우스개 소리가 기사로 나올 정도다.
극심한 레임덕에 빠진 부시로서는 말 한마디가 국민의 마음을 얼마나 흔들 수 있는지 스스로도 놀랐을 것이다. 취임 초 연설을 못한다고 구박받았던 부시이기에 더욱 그럴지 모른다.
부시 연설문을 담당했었던 데이비드 프럼(Frum)은 “부시가 속어를 많이 쓴다”고 걱정했다. 공화당의 원로 뉴트 깅그리치(Gingrich) 전 하원의장은 2001년 9월 11일 딕 체니 부통령을 만나 “부시의 연설 태도를 다듬지 않으면 국민 신뢰를 잃을 것”이라고 경고하려 했는데 그날 테러가 터져 면담을 취소했다고 털어 놓았다. 부인 로라조차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고 남편에게 몇 차례 핀잔을 주었다고 한다.
프럼과 깅그리치, 로라와 같은 얘기들은 지금까지 노무현 대통령도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다. 직설적인 언변과 잦은 말실수는 취임 초 부시와 노 대통령의 공통점 중 하나였다.
그런데 부시는 이번에 ‘명(名)연설가’ 소리까지 들을 정도가 됐고 부시와 같은 날 국정연설을 했던 노 대통령은 최악의 평가를 받고 있다. 이유가 뭘까.
부시는 캠프 데이비드 별장에 있는 ‘가족극장’에서 매년 국정연설 전 리허설을 한다. 한번 하는 게 아니라 정장까지 차려 입고 여러 차례 한다. 작년 국정연설 때는 원고를 30차례 손수 고쳤다. 발음 과외까지 따로 받았다. 노 대통령은 국정연설 다음날인 24일 “연설 도중 페이스를 좀 잃었다”고 했다. 과연 노 대통령이 준비를 얼마나 했는지 모르겠다.
연설 마지막, 부시는 행사장인 의사당에 참석한 일반 시민 중 흑인 2명(1명은 이민자), 여성 1명, 군인 1명을 일일이 호명하면서 “이들의 친절과 자기희생, 용기가 미 국민의 특징”이라고 국민을 치켜세웠다. 노 대통령은 청와대 영빈관에 청와대와 정부 관계자, 국정브리핑의 블로거 250여명을 모아놓았다. 거기엔 국민도, 국민의 대표인 의원도 없었다. 오로지 자기 편만 있을 뿐이었다.
부시는 “나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여성 국회의장 앞에서 연설하는 대통령”이라는 말로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Pelosy) 하원의장을 치켜세우며 연설을 시작했다. 부시는 민주당이 좋아할 만한 중도적인 정책을 많이 내놓았다. 부시가 균형예산을 약속하자 펠로시는 벌떡 일어나 박수를 쳤다. 노 대통령은 야당을 비판하고 언론을 욕했다. 민주당을 대표한 제임스 웹 상원의원은 부시 연설 직후 TV연설에서 민주당의 입장을 밝혔지만, 한국 야당에겐 반론의 기회가 없었다. 부시는 화합을 얘기했지만 노 대통령은 이를 악물고 적의(敵意)를 드러냈다.
결국 부시와 노대통령 연설의 가장 큰 차이는 마음의 차이다. 마음 한번 돌리면 천국과 지옥이 갈린다는데, 그 마음 한번 바꾸지 못해 국정연설을 시청한 국민 마음을 찢어 놓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