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6일자 오피니언면에 황태연 동국대 정외과 교수가 쓴 시론 <'역주행' 개헌안, 즉각 철회해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지난 4년 내내 역주행해 온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말년에 ‘최후의 역주행’을 감행하고 있다. 초연한 대선 관리로 국정 인계 채비를 해야 할 시기에 권력 분산의 시대정신을 등지고 대선·총선 동시 실시로 입법권까지 대통령에게 집중시킬 개헌안을 내놓은 것이다. 새 대통령 선출 국정 아젠다와 21세기 시대 흐름을 동시에 거스른 이 역주행 개헌안은 이미 다중(多重)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현행 헌법의 제왕적 대통령제는 막강한 대권 때문에 권위주의, 보스정치, 권력형 비리, 대통령의 책임 과잉과 ‘동네북’ 노릇, 지역 갈등 격화 등 갖은 폐해를 야기했다. 동시에 권력 분산 요구도 갈수록 커졌다. 이에 마지못해 노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이원정부제) 개헌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 제도는 유럽 22개 주요 국가 중 내각제(7개)와 집정제·재상제 국가(2개)를 제외하고 대다수 공화국(13개)이 채택한 장기 검증된 정부제도다. 모리스 뒤베르제에 의하면 이 제도에서는 국민에게 책임지는 ‘국가 수반’과 의회에 책임지는 ‘행정 수반’이 분리되고, 국가 수반(대통령)은 당쟁에 초연할 수 있도록 초당적 비상 국정과 외교·안보만을 맡고 행정 수반(총리)은 당쟁에 얽힌 내정만을 나눠 맡는다. 따라서 저 대선 공약은 근본적 권력구조 개혁을 약속한 것이었다. 

    그러나 대선·총선 직후의 호기를 다 날리고 뒤늦게 튀어나온 이번 개헌 제안은 저 개헌 공약의 중요 내용을 다 버리고 껍데기(4년 중임제)만을 취하고 있다. 먼저 4년 중임제로 대선·총선을 일치시켜 선거 횟수와 단임제 폐해를 줄이는 개헌으로 그 이상의 개헌을 위한 물꼬를 튼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총선과 대선이 일치하는 나라로 미국 외에 여러 후진국을, 개헌 조치로 두 선거 시기를 일치시킨 나라로 프랑스를 제시한다. 

    그러나 프랑스는 사정이 달랐다. 프랑스의 개헌 목적은 선거 횟수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동거 정부의 속출’을 막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목적의 개헌은 유별난 좌우 갈등 탓에 ‘동거 정부’를 불안해하는 프랑스 특유의 조치이고(오스트리아, 핀란드 등 다른 분권형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동거 정부가 일상이다), 또 대선·총선을 일치시키는 이런 개헌이 수용된 것은 선거 연승으로 인한 권력 집중 위험이 분권형 대통령제로 상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도 사정이 다르다. 2년 주기의 미국 총선 중 한 번은 대선과 일치하나 다음 번은 대통령 임기 중반에 ‘중간 평가’로 치러지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미국 사례는 오히려 이번 개헌안이 그릇된 것이라는 방증이다. 칼 뢰벤슈타인의 말대로 일국에 특유한 제도는 타국에 이식되면 변질된다. 프랑스 개헌방식도 한국의 제왕적 대통령제와 결합하면 변질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한국에서 중간 평가 기회를 제거할뿐더러 대통령 진영의 대선·총선 연승과 지나친 권력 집중으로 야당 존립을 위협할 반(反)민주제도를 낳을 것이다. 

    더구나 선거 횟수를 줄이려 개헌까지 하는 것은 어리석다. 개헌보다 쉬운 길이 있기 때문이다. 지방선거를 총선과 일치시키는 방안이다. 이것은 지방의원·단체장 임기가 헌법 규정이 아니므로 간단한 법 개정만으로 가능하다. 2010년 5월 지방선거 전에 차기 지방의원·단체장에 한해 임기를 2년으로 줄이면 2012년부터 지방선거·총선을 성황리에 같이 치를 수 있다. 이리 보면 ‘올해 놓치면 20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도 어리석다. 

    사정이 이럴진대 레임덕 대통령이 왜 역주행을 감행할까? 공약 결벽증과 어설픈 실력의 합작일 가능성이 크다. 정략적 의도가 있든 없든 개헌 공방에서 일단 이익을 보는 진영은 노 대통령과 친노(親盧)세력이다. 그러나 정치는 ‘생물’이라서 개헌 몰이는 이에 손해 볼 세력들의 묵살 자세를 더욱 굳혀 대통령에게 파멸적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고로 실현 가망도 없는 이번 개헌안은 지금이라도 당장 철회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로울 것이다. 청와대에도 이득이 있다. 부메랑을 면하고 “반대 때문에 공약을 이행할 수 없었다”는 알리바이가 생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