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대통령이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11개월 정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갑자기 현행의 5년 단임 대통령제를 4년 연임제로 바꾸는 헌법개정(이하 '개헌')을 제안하고 아울러 자신이 절차를 밟아 개헌안을 발의하겠다는 뜻도 천명했다. 노대통령은 개헌 이유를 2008년이 5년제 대통령 임기와 4년제 국회의원 임기가 함께 만료되는 해이기 때문에 지금이 개헌의 적기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노대통령의 개헌 제안은 시기적 측면에서 정당성을 인정할 수가 없다는 것이 70%를 전후한 국민들의 의견이다. 그동안 5년 단임 대통령제가 초래한 국정에 대한 책임성 결여,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의 불일치로 인한 재정 낭비와 같은 각종 폐단으로 인해 개헌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의견이 대두되기는 하였지만 지금은 결코 개헌을 할 수 있는 적절한 시점이 아니라는 것이 대다수 국민들의 판단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개헌안 의결을 위한 국회 의결 정족수는 전체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으로 이를 위해서는 127석을 보유한 한나라당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개헌에 동의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개헌안의 국회 통과는 전혀 가능성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대통령이 갑자기 개헌 카드를 들고 나온 가장 중요한 목적은 임기 말 레임덕을 방지하고 정국을 자신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기 위해서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즉 '정치권 흔들기'를 통해 분열 직전에 놓인 열린우리당의 균열(龜裂)을 막고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을 이간(離間)시켜 한나라당의 분열을 유도함으로써 대선 국면을 여권에 유리한 방향으로 조성해 나가려는 것이다. 또한 노대통령은 개헌안이 국회에서 부결될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후속 카드로 대통령직의 중도 사퇴와 대선의 조기 실시라는 극단적인 수순을 밟아 나가는 승부수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노대통령이 이처럼 엄청난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면서 실현 가능성도 크지 않은 개헌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은 대선을 고려한 다목적 포석이라는 점이다. 즉 노대통령의 개헌 제안은 여권의 재집권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신호탄일 가능성이 높다. 여권의 입장에서 볼 때 현재의 정치판을 흔들지 않고서는 재집권 가능성이 갈수록 낮아지는 상황에서 노대통령이 계획적으로 개헌 카드를 들고 나온 것으로 보아야 한다.

    여권의 재집권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것은 개헌 논의와 함께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분위기 조성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며칠전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북한의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대북 지원을 무상으로 제공할 의사를 비쳤고 또한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특사를 교환할 용의가 있음을 밝힌 점이 이를 입증한다.

    이는 결국 노대통령의 개헌 제안을 이미 여권 주변에서 제기된 바 있는 '평화세력 대결집'의 명분을 위한 남북정상회담과 연계시켜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말해주는 것이다. 노대통령은 개헌 제안을 하면서 이번 개헌이 단지 4년 연임 대통령제로 전환을 위한 '원 포인트' 개헌이라는 점을 극구 강조하였지만 개헌 논의를 시작으로 나타나게 될 다양한 주장은 '원 포인트'라는 경계선을 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일단 개헌 논의가 물꼬를 트게 되면 좌파 성향의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대한민국의 존속과 관련된 영토조항, 통일조항, 평화조항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이들 주장은 더 나아가 새로운 헌법은 현행 헌법의 핵심 요소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라는 가치보다 통일을 최고 가치로 하는 헌법이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

    이와 유사한 주장은 이미 노무현 정부의 핵심 인사를 통해 여러 차례 표출된 바 있다. 2005년 10월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국회 답변에서 "평화체제를 넘어 남북연합을 내다본다면 영토조항을 손질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또한 열린우리당 윤호중 의원도 국회에 배포한 질의서에서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을 넘어 헌법상 영토조항, 남북교류 및 통일에 대한 규정 등을 근본적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2007. 1. 9, 조갑제닷컴)

    두말할 것도 없이 이와 같은 주장들은 대한민국의 체제를 바쳐주는 기본 틀을 허무는 위험한 주장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주장들이 개헌 논의를 통해 여과 없이 제기되고 이는 개헌의 성사 여부를 떠나 사회의 중요한 여론으로 형성되어 남북정상회담 분위기 조성을 위한 효과적인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이 노대통령이 실현 가능성도 크지 않고 엄청난 정치적 부담을 수반하는 개헌을 제안한 중요한 이유일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상과 같은 관점에서 노대통령의 개헌 제안은 여권의 재집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서 개헌을 가장한 좌파정권 재창출 시도이자 나아가 대한민국 헌법 파괴 시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를 경계하고 차단해야 한다. 결국 노대통령의 개헌 제안으로 대선 정국은 개헌(改憲)과 호헌(護憲) 또는 반헌법(反憲法)과 헌법(憲法)이라는 '편 가르기'로 시작되었다. 위대한 국민의 힘으로 불순한 개헌 시도를 막고 건강한 정권을 창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