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10일자 오피니언면 '포럼'란에 홍진표 자유주의연대 사무총장이 쓴 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이재정 통일장관이 대북 쌀 지원을 무상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특사 교환이 필요하다고 밝혀 남북정상회담을 구걸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물론 현재의 차관지원방식도 북한정권이 상환의 압박을 느끼고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무상전환은 대북지원의 강화라는 상징적 의미가 적지 않다. 남북정상회담과의 연계를 떠나 지난해 10·9 핵실험 도발에 대한 제재국면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대북지원 강화는 6자회담을 교착시키고 있는 북한 정권에 도발하면 오히려 더 챙겨준다는 해석을 유도할 수 있다.

    지난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 이후 무려 7년째 2차 회담을 갈구해 온 여권은 임기 막판까지 집착을 보이고 있어 대선을 겨냥한 ‘통일카드’ 만들기라는 해석이 자연스레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반(反)여권 진영에서는 여권의 통일카드에 대해 우려를 넘어 상당한 공포감을 갖고 있는데, 남북화해 무드 조성이 대선에서 여권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과연 통일카드의 위력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남북정상회담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로 오느냐, 합의사항이 무엇이냐 등 여러 시나리오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강봉균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이 “같은 민족끼리 사랑하자는 노래만 계속 부른다고 국민이 감동할 시기는 지났다”고 일갈했듯이 통일이 더 이상 국민들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붙잡을 만한 매력을 상실했다는 것만은 명확해 보인다.

    그 어느 때보다 통일에 관심을 가질 광복 60주년에 즈음해 실시한 문화일보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향후 10년간 한국사회의 극복 과제 중 정치 분야에서는 ‘국민통합기능 강화(23%)’, ‘정부행정효율(15%)’, ‘기업투명경영(12.1%)’, ‘남북통일(9.8%)’순으로 통일이 말석으로 밀려나 있다. 통일의 당위성이나 필요성에 대한 설문은 통일의 거대한 명분에 눌려 솔직하게 답하지 않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현실을 고려해 볼 때 이번 조사결과가 통일에 대해 명분보다는 현실 위주로, 필수가 아닌 선택적인 문제로 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려 주고 있다.

    결국 국민들의 통일 열기를 끌어내어 정치적 지지를 확대한다는 전략은 한마디로 20세기적인 구시대적 발상이다. 지난 대선 때도 노무현 후보는 북한의 비밀 핵개발이 폭로되자 ‘전쟁이냐 평화냐’라는 협박성 구호를 내세워 자신들의 대표 브랜드인 남북화해가 아니라 역으로 긴장 분위기를 득표에 십분 활용했다.

    물론 국민들이 통일에 대해서는 별 매력을 못 느끼지만 남북 간의 안정을 바란다는 점에서 남북정상이 핵문제 등에서 돌파구를 연다면 일정한 점수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김정일 정권은 핵문제를 풀더라도 이는 반드시 미국과 거래해야 큰 대가를 얻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한국 정부와의 빅딜은 결코 원하지 않는다. 정상회담에서 설사 ‘핵동결’ 정도의 선물을 한국에 준다고 해도, 그 효과는 일시적일 것이다.

    매사를 거래로 생각하는 김정일 정권이 김대중 정부처럼 엄청난 현금을 갖다 바치기도 어렵고, 10%대의 왕따 지지율과 임기 말에 직면한 한국정부와의 정상회담에 관심을 가질지도 의문이다. 남북정상회담 추진 그 자체를 반대할 일은 아니지만, 명확한 의제 설정과 상호 필요성 인식 등 기본적인 준비공정을 무시한 ‘묻지 마’식 추진은 홍보용 이벤트로 전락할 수 있다. 더구나 이 장관식의 어설픈 구걸하기는 북한정권에 오히려 받을 것만 챙기고 정작 정상회담에는 응하지 않는 ‘먹고 튀는’ 유혹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