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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4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백화종 주필이 쓴 '좌로나 우로나 …'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사람은 각자에게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우리 토양에 맞는 정치체제는 한국적 민주주의, 곧 유신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강력한 영도 없이 국가 안보와 조국 근대화가 가능하겠는가. 유신을 반대하는 건 대통령병에 걸린 김대중 김영삼 등과 그들의 추종자들이거나 색깔이 불그스레한 극소수 인사들뿐이다. 그들을 뺀 절대다수 국민이 먹고사는 데 유신이 무슨 지장을 주느냐.” 30여년 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말들이다.
오랜만에 비슷한 소리를 들으니 감회가 새롭다. 뉴라이트(신보수) 계열의 시민단체인 ‘교과서 포럼’이 최근 공개한 ‘한국 근현대사 대안 교과서’ 시안을 통해서다. 시안은 “유신이 조국 근대화를 이룩하려는 박정희의 숭고한 욕구 때문이었다”면서 “국가적 과제 달성을 위해 자원 동원과 집행 능력을 크게 제고하는 체제”로 찬양하고 있다. 시안은 또 일제의 조선 강점을 근대화 과정으로, 5·16을 국가적 과제였던 산업화를 주도할 통치 집단의 ‘혁명’으로 기술하고 있는 반면에 4·19를 좌파적 학생운동으로, 5·18을 ‘지역적 사정’이 작용한 민주화 항쟁으로 격하시켰다.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절대다수 국민은 대통령병에 걸리지도 않았고 색깔이 불그스레하지 않았어도 유신은 철폐돼야 할 반민주 독재체제라고 생각했다. 박 대통령과 유신이 안보와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며 절대다수 국민이 먹고사는 데 지장을 주지 않을지라도 옳지 않은 건 옳지 않은 것이고, 설령 대통령병에 걸린 사람이라도 부당하게 자유와 권리를 박탈당해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그리고 5·16은 쿠데타라는 데, 4·19는 혁명이라는 데 국민적 합의가 이뤄졌다.
군부 독재를 미화하고 민주화 운동을 깎아내린 듯한 이 시안으로 뉴라이트 운동 전체가 몰매를 맞는 분위기다. 민주화 운동 단체들은 물론이고 중립적인 쪽에서도 뉴라이트 쪽이 ‘오버’했다는 평가다. 뉴라이트 쪽의 일부 단체나 개인들은 ‘교과서 포럼’을 비판함으로써 몰매를 피하려는 모습이고 ‘교과서 포럼’까지도 이 시안이 단체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 작성자 개인의 의견일 뿐이라고 발뺌한다.
이번 ‘대안 교과서’ 파문을 애써 가치중립적으로 보자면 역사 발전의 한 과정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세상일이라는 게 많은 경우 시계추처럼 한번 오른쪽으로 밀리면 다시 왼쪽으로 돌아가려는 반동의 힘이 생긴다. 좌파의 급부상에 대항하여 궐기한 우파의 한 단체가 반동의 힘에 의해 너무 오른쪽으로 밀린 결과로 나타난 현상이 이번 파문인 것이다. 역사적 사실들을 굳이 좌파의 반대편에 서서 해석하려다 보니까 국민적 합의가 이뤄진 사안마저 부정하는 데까지로 지나쳐버렸다.
이처럼 역사의 큰 흐름에서 보면 이번 일이 좌편향에 맞서 잠시 일었던 역편향의 잔물결이었고, 학문적 차원에서 사관(史觀)과 관련한 하나의 논쟁거리를 제공한 것으로 역사학 발전에는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와 뉴라이트 쪽엔 자해행위가 되지 않았나 싶다. 상대방을 반박하기 위해 객관적 사실마저 부정하는 건 정치적 주장 내지 어깃장으론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역사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학자들이 취할 자세는 아니다. 객관성을 잃어선 좌파적 사관의 교과서를 극복할 수 없을 뿐더러 되레 좌파 쪽을 도와주는 자충수가 된다. 특히 좌파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뉴라이트 운동을 한다면서 독재까지 미화하는 건 자가당착이다.
기자들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게 있다. 해석이나 평가엔 주관이 불가피하더라도 최소한 팩트(사실)만은 주관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기록하도록 노력하라는 것이다. 역사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요구되는 사항일 것이다. 팩트뿐 아니라 해석과 평가에 이르기까지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진실만을 붙잡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 금상첨화일 터이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