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28일 사설 '민심에 역주행하며 출근한 KBS 정연주씨' 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KBS 사장에 재임명한 정연주씨가 어제 집무를 시작했다. 그런데 첫 출근부터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출근 저지투쟁에 나선 노조가 주차장 입구를 막자 정씨는 출구를 통해 '역주행'으로 회사에 들어갔다. 정치권의 날치기 법안 통과보다도 더 드라마틱한 출근 작전이었다. 아이디어는 기발했지만 참으로 볼썽사나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 KBS 노조위원장은 "출입문을 놔두고 거꾸로 출구로 들어오는 비양심적 사람을 누가 KBS의 수장이라고 인정하겠는가"라며 "그의 행동은 뒷구멍을 불사하는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역력히 보여줬다"고 비난했다.

    그간 우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씨의 연임에 반대해 왔다. 그가 공영방송을 권력의 선전도구로 만들어 불공정.편파 보도를 일삼았고, 경영 능력과 전문성.도덕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제 국민이 다 안다. 그래서 그가 왜 연임하면 안 되는지를 더 이상 따지고 싶지도 않다. 다만 그 혹독한 군사정권도 민심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이런 무리한 인사는 하지 않았다는 말은 하고 싶다. 이날 정씨의 역주행 출근은 결국 민심에 대한 역주행이었던 셈이다.

    취임식도 못 치른 정씨는 사내 방송을 통해 "모든 권력으로부터 KBS의 독립성을 지켜내겠다"며 "공정하고 객관적인 보도와 고품격 프로그램으로 공적 서비스를 다하는 일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은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이다. 그러면 '아무리 느슨한 기준을 적용해도 불공정 방송'이었다는 탄핵방송은 정씨가 KBS 사장이 되기 전 일어난 일이란 말인가. 바로 그 KBS의 독립성을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그는 스스로 KBS 사장 자리를 사양했어야 옳다. 정씨가 진정 KBS를 사랑하고, 주인인 국민의 품으로 돌려줄 의사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자진 사퇴하는 게 도리다.

    KBS 임직원들도 전문 방송인으로서의 직업적 자존심과 긍지가 있다면 이 같은 낙하산 인사에 보다 분명하게 반대해야 한다. 'KBS엔 인물이 그렇게도 없나'하는 비아냥을 언제까지 들을 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