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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5일자 사설 '김 전 대통령, 인권의 역사는 바로 얘기해야한다' 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4일 국가인권위원회 출범 5주년 기념식에서 “소련, 동유럽 등 공산국가의 인권은 외부의 간섭과 억압에 의해서 해결된 예가 없다. 개혁·개방으로 유도했을 때만 독재가 완화되고 민주화까지 됐다. 햇볕정책이야말로 북한의 인권을 개선하고 민주화를 실현시키는 길”이라고 말했다.
1975년 발효된 미국의 잭슨-바닉 무역법 수정조항은 이민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공산권 국가에 대해 정상적 무역관계를 제한토록 했다. 같은 1975년 미국, 소련, 유럽 국가 등 35개국이 서명한 헬싱키 협정은 서방국가들이 소련 및 공산권 국가들의 체제를 인정하고 경제지원을 해주는 조건으로 이들 국가의 인권개선을 요구했다.
당시 미국의 키신저 국무장관은 공산권국가에 대한 지원을 인권에 연계하는 정책이 동서간의 데탕트(긴장완화) 분위기만 해칠 뿐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단기적으론 역효과도 발생했다. 그러나 잭슨-바닉 수정조항과 헬싱키 협정은 소련 및 공산권국가의 인권문제를 국제사회에 부각시키며 장기적으로 동구권의 개혁·개방을 촉진시켰다.
소련의 인권운동가 사하로프와 노벨문학상 수상자 솔제니친을 시베리아에서 구출해 내고 그들에게 자유의 길을 열어준 것도 미국의 인권압력이었다. 또 미국 및 서방국가들이 1989년부터 악명 높던 남아프리카의 아파르트헤이트 인종차별정책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기 시작한 지 4년 만인 1993년, 100년 이상을 내려온 남아프리카의 인종차별정책은 최후를 맞았다.
김 전 대통령은 1970년대에 미국에 있으면서 미국 정부를 향해 “인권을 탄압하는 유신체제를 지원하지 말 것”을 강력히 요구했었다. 또 김 전 대통령이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고도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 역시 1981년 출범한 미국의 레이건 정권이 한미정상회담과 김 전 대통령의 사면을 연계해 압력을 가했던 덕분이었다.
국제사회의 관심과 압박에 의해 세계 각국의 인권이 개선돼 왔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국제적 인권압박의 1급 수혜자였던 김 전 대통령이 자신의 햇볕정책을 구해내기 위해 북한동포의 인권을 외면한다면 훗날 북한 주민을 어떻게 대하고 역사의 심판을 어떻게 감당하겠다는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