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중-노무현 두 전·현직 대통령의 갑작스런 회동을 두고 한나라당은 민감한 반응을 나타냈다. 겉으로는 '그래봤자 소용없다'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DJ의 최근 행보가 여권 지지층 재결속을 이뤄 낼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6일 오전 최고위원회의 참석을 위해 국회 대표최고위원실 모인 강재섭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노-DJ 만남을 평가절하하며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을 연출하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불편한 속내를 완벽히 감추지는 못했다. 

    회의 시작 전 강 대표는 여의도연구소장 임태희 의원에게 "북핵 등 현안에 대한 여의도연구소의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해보는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강 대표는 임 의원 뿐 아니라 김성조 전략기획본부장에게도 회의 시작 전 현안관련 지시를 내리는 등 향후 전개될 여권발 정계개편에 DJ가 어떤 역할을 할지를 두고 분주히 계산기를 두드리는 모습이었다. 강 대표는 회의를 시작하자 마자 "꼭 한번 정식으로 얘기를 해야겠다"며 여권의 정계개편 움직임에 대해 포문을 열었다.

    강 대표는 "정당이라는 것은 자신들이 한 일을 그대로 국민에게 책임져야 한다. 그런데 실컷 하다가 책임을 회피하려고 단체를 해산한다든지, 제3지대에서 다시 만나자든지 하는 건 책임회피용 정계개편으로 있을 수 없는 얘기"라고 주장했다. 그는 "음식 더 잘 만들 생각은 안하고 간판만 바꾸려 한다. 주방장, 종업원들은 다 그대로 인데 간판만 바꿔 국민을 속이려 한다"고 성토했다.

    강 대표는 여권의 정계개편 움직임을 "권력만 좇는 정치 투기꾼들의 속임수, 떳다방 정치, 위장과 교란으로 국민을 속이는 새판짜기"등 원색적인 용어까지 사용하며 맹비난했다. 특히 그는 '노-DJ' 회동에 대해 "지난번에 전직 대통령 다 모시고 하고 싶은 얘기는 했을 것이다. 어떤 장소에서는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의 대화단절이 북핵사태를 만든 것처럼 얘기하고 다시는 '김영삼 같은 대통령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는데 사실 '노무현 대통령 같은 대통령 그만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느닷없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찾아가 대화를 했다. 만나서 부동산 대책을 논의했다는데 삼척동자가 다 웃는다"며 "결국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정계개편 신호탄을 올린 게 아니겠느냐"고 의혹을 던졌다. 그는 또 "국민을 속이고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대북특사문제, 남북정상회담 문제를 논의하지 않았겠느냐고 국민은 믿는다"며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소상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한 뒤 "특정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가 부활되고 (노-DJ 만남이)국민에게 책임을 회피하는 정계개편의 진원지가 돼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이재오 최고위원도 "정당이 잘못하면 비판을 받고 잘하면 국민의 사랑을 받는 게 정당정치"라고 주장했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스스로 권력을 잡으려고 많은 정당을 깨고 만들었다. 평화민주당, 새정치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 이게 지금 다 어떻게 됐느냐"며 "정당이 이렇게 돼서는 안된다"고 충고했다.

    이 최고위원은 "한나라당도 지난날에 당명을 바꾸자고 했고, 우리도 국민들로부터 '부정부패정당' '차떼기 정당' 등 온갖 매서운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잘못하면 비판받고 그 속에서 국민에게 신뢰를 주면서 지금까지 지탱해 왔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지지도도 높다"고 말했다. 그는 "명색이 집권당이 임기도 끝나기 전에 이합집산하겠다는 것은 DJ식 권력잡기 술수에 불과하다"며 "국민은 용납하지 않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임기동안 더 이상 정치판을 흔들지 말고 잘못하면 물러나면 된다"고 주장했다.

    전여옥 최고위원은 "열린당과 노 대통령의 행태를 보면 한 마디로 완전히 국민에게 애프터 서비스를 해주는 것 같다"며 "10%지지 정당, 계속 국민의 뜻을 거역하는 대통령을 국민들은 참아주고 있는데 국민에게 아예 '정을 떼라'는 애프터 서비스를 해준다"고 비꼬았다. 전 최고위원은 "최근 정계개편 움직임에 대해 강재섭 대표가 '신장개업'이라고 했는데 이 정권이 만들어 준 음식은 고통과 가난뿐이다. 시장경제는 만들 줄 모르면서 어떻게 식당을 연다는 것이냐"며 "현란한 광고물로 공짜나 다름없는 음식을 제공하겠다데 거기 속을 국민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