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조만간 재개될 예정이다. 중국 외교부는 10월 31일 중국, 미국, 북한의 6자회담 수석대표들이 빠르고 편리한 시일 내에 6자회담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와 관련하여 6자회담의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는 “북한이 6자회담 복귀와 관련해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았으며, 6자회담이 11월 혹은 12월에 열릴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10월 9일 핵실험 이후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던 북한이 예상보다 빨리 6자회담에 복귀하게 된 결정적 원인은 유엔 안보리가 만장일치로 대북 제재를 결의하면서 국제 공조를 통해 북한을 강력하게 압박한 결과이다. 단기적으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를 약화시키고 장기적으로 핵능력의 신장을 위해 일단 협상에 복귀해 시간을 벌자는 속셈인 것이다.

    당초 6자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걸고 있지 않는 미국이 북한의 6자회담 참여를 촉구한 이유는 북한의 비타협적 자세를 부각시켜 국제 공조를 강화하고 중간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협상 국면으로의 전환을 통해 핵확산 방지에 실패했다는 여론을 무마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향후 6자회담을 동북아 다자안보체제로 발전시키려는 목표를 갖고 있는 중국은 회담 재개를 통해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해 손상된 대북 영향력을 회복하려는 목적에서 회담 재개를 위한 중재에 열성을 보여왔다. 결국 6자회담 재개 합의는 이러한 세 나라의 입장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결과인 것이다.

    그러나 세 나라 수석대표가 6자회담 재개에 합의한지 하루만에 북미간에는 중요한 입장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북한이 6자회담 복귀와 관련해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았다”는 힐 차관보의 10월 31일 발언과는 달리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11월 1일 “금융제재 문제를 논의, 해결한다는 전제 아래 6자회담에 복귀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이는 6자회담이 재개되더라도 성공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을 암시한다. “미국과 북한이 과거와는 다른 접근법을 취하지 않으면 6자회담의 장래가 없다”는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전 미국 국무부 한국과장의 전망대로(2006. 11. 1, 연합뉴스) 미국과 북한 사이에는 북한 핵과 대북 금융제재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차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북한 핵문제와 관련하여 작년 6자회담에서도 미국과의 ‘핵군축 협상’을 주장했던 북한은 이번에도 핵보유국 대우를 요구하며 핵군축 협상을 주장할 것으로 보이지만 미국은 결코 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대북 금융제재 문제에 대해서도 미국은 ‘논의’에 무게를 두고 있는 반면 북한은 ‘해결’을 지향하고 있다. 달러 위조나 핵실험과 같은 북한의 불법행위를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인 반면 북한은 핵보유를 인정하고 대북 금융제재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6자회담이 열리더라도 한반도 비핵화가 실질적 진전을 이룰 때까지 대북 금융제재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결의에 따른 각종 제재를 계속하겠다는 미국의 입장과 제재의 해제라는 전제 하에 6자회담에 복귀하겠다는 북한의 입장이 대립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미국과 북한의 입장이 강하게 대립되고 있는 상황에서 양국은 근본 문제의 해결보다는 현상 타개라는 전술적 목적에서 6자회담을 재개하게 된 것이다. 바로 이 점이 6자회담의 성공을 어렵게 만드는 핵심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러면 북한이 성공을 기대할 수 없는 6자회담에 복귀한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공교롭게도 북한의 6자회담 복귀는 2005년 9월 4차 6자회담 재개 직전의 상황처럼 북한이 위기를 최대한 고조시켜 협상력을 높인 뒤 6자회담에 복귀했던 전례와 동일하다. 2004년 11월부터 2005년 9월에 이르는 기간 중 부시 대통령 재선, 북한의 핵보유 선언, 위기 고조, 3국간 물밑 접촉, 6자회담 재개, 공동성명 채택, 북한의 달러 위조, 공동성명 사문화(死文化)로 이어졌던 전철이 있다.

    이번에도 북한의 달러 위조, 미국의 강력한 대북 금융제재 시행, 북한 핵실험, 위기 고조, 3국간 물밑 접촉, 6자회담 재개로 이어지는 과정이 동일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한 목적이 핵문제의 해결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로 다급해진 상황에서 핵능력의 신장을 위한 추가 핵실험 때까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완화시키며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따라서 문제의 핵심은 북한의 핵실험으로 과거와는 달리 강경한 입장을 견지할 수밖에 없는 미국이 계속 강경한 입장을 견지하면서 6자회담 참가국들을 설득해 효율적으로 북한의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북한이 핵군축 협상 카드를 들고 6자회담 참가국들을 압박하는 경우 미국이 이에 말려들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작년의 6자회담과 같은 전철이 또다시 반복되고 6자회담 재개가 핵문제의 해결은커녕 오히려 북한 핵능력의 신장을 도와주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로 미루어 볼 때 6자회담을 통해서는 북한 핵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진다. 김정일은 자신의 정권 유지를 위해 결코 핵무기를 포기할 수 없다. 이는 결국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를 통해 김정일 정권의 실질적 변화를 유도하든지 아니면 김정일 정권의 교체를 실현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점을 말해준다. 북한 핵실험 이후 이제까지 국제사회는 그 흐름으로 가고 있다.

    그러나 6자회담 재개를 계기로 이제까지의 국제 공조가 붕괴되고 국제사회의 강경한 흐름이 퇴색될 가능성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새로운 흐름은 북한에 대한 영향력 증대에 골몰하고 있는 중국과 3기 좌파정권 창출에 골몰하고 있는 우리 좌파정부에 의해 시작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게다가 6자회담이 재개되는 시점이 미국의 중간선거가 끝난 이후라는 점에서 미국 의회 구도의 변화와 맞물려 국제사회가 또다시 북한의 전략에 말려드는 우(愚)를 범하지 않게 되기를 희망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