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대통령은 11월 1일 외교, 안보장관에 대한 인사 개편을 단행하고 외교부장관에 송민순 청와대 안보정책실장, 통일부장관에 이재정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국방부장관에 김장수 육군참모총장, 국가정보원장에 김만복 국가정보원 1차장을 각각 임명했다.

    이번 개편은 자주(自主)와 민족(民族)이라는 어설픈 논리에 충실한 결과로 초래된 전시작전통제권(이하 작통권) 환수와 북한 핵실험에 따라 나라의 외교, 안보가 총체적으로 붕괴된 상황에서 이에 대한 문책에서 비롯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대통령은 문책은커녕 외교, 안보를 파탄으로 만든 핵심 인사들을 재기용하는 인사를 단행한 것이다.

    따라서 이번 개편은 전향적인 '오기(傲氣) 인사'에 '코드 인사'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번 개편은 외교, 안보가 총체적으로 붕괴된 주요 원인인 노대통령의 철학이 전혀 변화되지 않았음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개편은 외교, 안보의 파탄에 대한 문책인사가 아니라 내년 대선을 겨냥한 인사임이 분명해졌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해야 할 사람은 송민순 외교부장관, 이재정 통일부장관, 김만복 국가정보원장이다.

    송민순 외교부장관은 금년 1월부터 노대통령의 외교를 최측근에서 보좌한 사람으로 나라의 외교, 안보를 파탄으로 만드는데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다. 그는 작통권 환수를 무리하게 추진한 결과 추가적 안전보장 장치도 없이 한미연합사를 해체하게 만들었고 또한 북한 핵실험 가능성을 일축하면서 사실상 북한 핵무장을 방관해왔다.

    지난 10월 4일에는 북한 외무성이 핵실험 계획을 발표하자 "상황에 근본적 변화는 없다"고 말했고, 9일에는 북한이 핵실험을 단행하자 미국의 제재를 비난하면서 반미선동에 나섰다. 18일에는 "인류 역사상 전쟁을 가장 많이 한 나라가 미국"이라고 했다가 미국 정부로부터 해명을 요구받기도 했다. 그 결과 우리 국민은 북한 핵무기 앞에 맨몸으로 쪼그리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는 처량한 신세로 몰리게 된 것이다.

    이재정 통일부장관은 이종석 전 장관을 능가하는 햇볕정책 옹호자로 알려져 있다. 10월 18일에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북한의 2차 핵실험은 다른 나라의 예를 보면 필연적으로 하는 것이므로 확대해석이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개성공단, 금간산관광 사업의 지속을 주장했다.

    또한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자격으로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권 보장(2005. 9), 국가보안법의 신속한 정비(2005. 9), 남북정상회담 정례화(2005. 12) 등을 건의하여 김정일 정권에 대한 지원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지난 2월 23일에는 "대북 지원은 국민의 선택이 아닌 의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김만복 국가정보원장은 김승규 전 원장이 "코드를 맞출 우려가 있다"며 내부인사의 원장 발탁에 강한 거부감을 표시했던 당사자이다.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 인맥으로 '386간첩단 사건'의 수사 착수 및 대외 공개과정에서 수사의 시기와 상황 등을 문제삼아 수사에 발목을 잡았던 사람으로 현재 진행중인 간첩단 사건 수사는 심각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처럼 노대통령은 당연히 문책되어야 할 사람을 요직에 기용한 것이다. 노대통령이 상식(常識)과 정도(正道)를 져버리고 이와 같이 무리한 인사를 단행한 이유는 바로 두 가지 정치적 목적 때문이라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하나는 국정운영 실패로 지지율이 최하를 기록하고 있고 여권이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정계개편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고, 다른 하나는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을 통해 내년 대선에서 3기 좌파정권의 창출에 영향력을 미치기 위한 것이다.

    첫 번째 문제와 관련하여 현재 대통령과 집권당 지지도가 각각 12.9%와 14.1%(2006. 10. 24, 한국사회여론연구소)에 불과하고 여권의 분열 가능성마저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문책인사를 통해 국정 실패를 자인하기보다는 자신의 입장을 강력히 고수함으로써 향후 정계개편에 대한 영향력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철저하게 노대통령의 코드에 맞춰 활동해 왔던 김만복 1차장을 국가정보원장에 기용한 것은 북한 핵실험의 와중에서 청와대 특보단을 대폭 보강한 것과 맞물려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바로 내년 대선을 겨냥하여 호남의 지지세력을 규합하려는 열린당 주류와는 달리 부산, 경남을 중심으로 하여 향후 정계개편과 대선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준비의 일환임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두 번째 문제와 관련하여 대북 포용정책의 지속을 통해 내년 대선 정국을 좌파정권의 탄생에 유리한 구도로 끌어가기 위한 구상의 일환으로 보인다. 그동안 일각에서 제기되어온 남북정상회담 추진과 관련하여 이 문제를 실질적으로 주관해 온 사람으로 알려진 송민순 청와대 안보정책실장을 국내외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외교부장관에 기용한 것이 이를 입증한다.

    또한 줄기차게 대북 포용정책의 지속을 강조해 온 이재정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을 통일부장관에 기용한 것은 강력한 대북 제재라는 국제사회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대북 포용정책을 고수하겠다는 아집(我執)의 표현이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과의 마찰이 불가피해져 한미관계에 결정적 악영향을 미칠 것이 뻔하다.

    이번 인사는 국가의 존망과 국민의 목숨이 달린 외교, 안보문제를 자신의 정권기반 안정과 좌파정권의 재창출을 위한 볼모로 삼으려는 지극히 무책임한 인사이다. 게다가 이제까지 노대통령이 보여준 인사 관행으로 보아 나라의 외교, 안보를 파탄으로 만든 또 다른 핵심 당사자인 이종석 전 통일부장과 윤광웅 전 국방부장관도 다른 요직에 기용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와 같은 노대통령의 무리한 인사에 따라 나라의 외교, 안보는 더욱 심각한 위기 국면에 처하게 될 것이다. 참으로 어이가 없는 사람을 지도자로 모시고 살아야 하는 국민들이 애처롭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