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30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이신우 논설위원이 쓴 시론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몇년 전 북한 함남 신포에 경수로발전소를 건립하던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한국측 관계자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이 발전소 공사 현장에는 북한 노동자들이 수백명 참가했는데 그 관계자가 노동자들의 점심식사 장면을 들려주었다. 그는 이들의 식사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고 한다.

    식당은 자유배식을 했다. 북한 노동자들은 늘 건장한 청년 2~3인이 먹어도 될 만큼의 양을 식판에 퍼담고는 했다. 말들은 안하지만 집에서는 아예 식사를 거르는 것 같았다는 설명이다. 집에서 식사를 거르면 가장의 몫은 가족들이 나눠먹을 수 있고 자연히 가족 모두가 배부를 수 있으리라는 게 그 관계자의 추론이었다.

    물론 KEDO가 이들에게 줄 돈을 제대로 주지않은 것은 아니다. 당연히 정상적인 임금을 지불했다. 단순 노무자의 경우 월급이 110달러였으니, 이를 북한돈(달러당 143원)으로 환전할 경우 1만5730원이나 된다. 2006년 북한 개성의 일반 노동자 임금이 북한 화폐로 2000~3000원임을 감안하면 결코 작은 액수가 아니다. 게다가 110달러가 온전히 북한 노동자들에게 전달된다면 이들은 달러 화폐를 암시세로 환전했을 것이고 이렇게 되면 실제 가치는 엄청날 수밖에 없다. 잘만 하면 말 그대로 팔자고칠 판이었다.

    그런데도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건설현장의 북한 노동자들은 내내 ‘점심식사 투쟁’을 그치지 않았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KEDO에서 지불하는 임금이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들 임금의 거의 대부분은 그대로 북한 당국의 특정 금고로 흘러들어가고 만 것이다.

    그 돈이 노동당의 대남(對南)적화통일전선 전략에 쓰였는지 아니면 당과 군 지배계층의 자녀 유학비로 쓰였는지는 전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요즘 남한사회 여기저기서 난무하는 노골적 친북 행위나 구호들을 접하자면 상당액의 운동자금이 남한으로 역류하고 있음도 짐작케 한다. 아니, 북한 노동당 간부들의 국가의식이 투철하다면 한푼의 ‘횡령’도 없이 전액 핵개발을 위해 쓰였을지도 모른다.

    최근들어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의 임금 문제를 놓고 말들이 많다. 이들 노동자가 매달 받는 돈이 27달러로 하루 평균 1달러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1992년 인도네시아 나이키 공장에서 하루 일한 대가로 노동자들이 받은 돈이 1달러20센트인 것과 비춰봐도 대단히 충격적이다.

    1996년 7월22일 미국 시카고의 나이키 타운에서 시위를 벌이던 인도네시아 여성 해고노동자 치치 수카에시는 당시 미국 소비자들에게 이렇게 호소했다. “회사 전속 광고모델 마이클 조던에게 2000만달러를 지불하는 ‘나이키’가, 한 켤레에 70달러가 넘는 운동화를 하루에 수십 켤레 만드는 노동자들에게 주는 돈은 겨우 2달러다.”(한겨레 1996년 7월24일자)

    물론 개성공단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들이 북한 노동자들을 착취하지는 않는다. 개성공단 진출 한국기업은 채용 근로자에 관한 한 북한 당국과의 계약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노동자에 대한 채용이나 상벌, 해고 등 인사 권한을 북한 당국이 쥐고 있는 대신 임금은 월 57.5달러로 책정돼 있다. 그런데 이 57.5달러 가운데 무려 30달러가 노동당으로 상납된다는 소식이다. 이마저도 나머지가 노동자의 손에 들어간다면 다행이다. 한나라당 김기현 의원이 지난 22일 입수한 ‘개성공단 입주업체 현안사항’ 자료에 따르면 나머지 27.5달러 가운데 17.5달러는 보험료 및 기타비용으로 들어가고 최종 가처분 임금은 10달러뿐이다.

    그렇지않아도 국제 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RW)는 그동안 개성공단 노동환경 보고서를 통해 노동자들이 월 50달러의 최저임금을 받도록 명시한 개성공단 노동규정에 위배된다면서 노동자들에게 직접 임금을 지불하는 방식을 요구하고 있다. 북한의 국제노동기구(ILO) 가입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우리만 언제까지 노동당의, 노동당에 의한, 노동당을 위한 노동 현장을 모른 체할 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