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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30일자 오피니언면 '포럼'란에 이상돈 중앙대 법학과 교수가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민노당과 관련이 있는 ‘386 운동권’의 일부가 북한의 지령을 받은 간첩으로 밝혀진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친북반미 운동권이 내건 구호가 북한의 그것을 빼다박은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던 것이다. 좌파 운동권의 북한과의 연관성은 막연한 개연성만 논의돼 왔던 것인데, 비록 일부일망정 그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국내의 친북세력 속에 북한의 촉수(觸手)가 얼마만큼이나 침투해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북한의 핵 위협에 직면해 있는 우리나라 곳곳에 간첩이 침투해 있다면 우리는 정말로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해 있는 셈이다.
북한의 간첩이 우리 주변에서 활개치고 있는 현실 못잖게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간첩불감증(不感症)’이다. 심지어 간첩이 있어도 우리나라에 큰 문제가 있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으니 한심한 일이다. 우리가 간첩에 대해서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한반도가 분단되고 6·25라는 참극이 발생한 데는 미국과 영국에 침투한 소련 간첩들이 결정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행정부의 국무부 고위관료였던 앨저 히스는 얄타회담에 참가해서 한반도를 분할하는 협상이 소련에 유리하게 타결되도록 했다. 원자탄 간첩 로젠버그 부부는 미국의 핵 기술을 소련에 넘겨 소련이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게 했고, 핵무기를 갖게 된 스탈린은 마음놓고 김일성에게 남침을 지시했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중 워싱턴의 영국 대사관에선 킴 필비, 도널드 매클린, 가이 버제스 등 케임브리지대학을 나온 소련 간첩 3인방이 암약했는데, 이들은 스탈린이 동유럽을 장악하고 한국을 침공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1990년대 들어 옛 소련과 동독의 기밀문서, 그리고 ‘베노나 프로젝트’라는 미국의 극비문서가 공개되자 공산 간첩이 자유진영 곳곳에 침투했었음이 명백해졌다. 베노나 문서는 앨저 히스뿐만 아니라 루스벨트 행정부에서 뉴딜정책을 이끌었던 해리 홉킨스, 재무부 고위관료로서 브레턴우즈협정을 탄생시킨 해리 화이트 등도 소련의 간첩이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동독의 첩보기관 슈타지가 작성했던 파일이 공개되자 동독의 간첩이 서독의 곳곳에 침투해 있었음을 보여 주었다. 특히 미국에 반대하는 반전(反戰)·평화운동을 벌였던 시민단체들이 동독의 자금을 받았던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슈타지 문서의 많은 분량이 동독 최후의 순간에 파기됐음에도 이런 사실이 드러났으니, 냉전시대에 서독에 얼마나 많은 간첩이 암약하고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진보좌파들이 지난 수십 년 동안 그들의 반역행위를 호도(糊塗)하기 위해 교묘한 역사왜곡을 시도했다는 점도 우리가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로젠버그 부부와 앨저 히스가 법원에 의해 단죄됐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좌파는 이들이 ‘매카시즘’ 때문에 희생양이 됐다고 거짓말해왔다. 좌파의 이같은 역사왜곡은 일단 성공했지만 베노나 문서는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이 간첩으로 지목한 사람들이 실제로 간첩이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현 정부 ‘친북 기조’의 배후에 킴 필비, 앨저 히스 같은 간첩이 도사리고 있는지, 반미운동의 배후에 북한의 자금이 개입돼 있는지 등은 결국 한반도판(版) 슈타지 문서와 베노나 문서가 공개돼야 알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동독 간첩이 서독에 그렇게 많았어도 결국 동독이 망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하지만 동독이 붕괴한 것은 폴란드의 자유노조 운동이 연쇄반응을 일으켜 동유럽 공산체제 전체가 몰락했기 때문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간첩불감증’이야말로 망국(亡國)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닌가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