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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5일 재보궐선거 최종결과가 개표방송을 통해 발표되자 한나라당은 '호남 약진'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비록 텃밭인 영남을 무소속에게 빼앗기긴 했지만 후보조차 내지 못하던 '불모지 호남'에서 한나라당 후보가 8.2%의 득표율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17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의 이 지역 득표율은 1.7%에 불과했다. 30개월만에 5배가량 오른 것이다. 이날 나경원 대변인은 "동토의 땅 호남에서 희망의 싹을 틔웠다. 그동안 마음의 벽을 허물고 노력한 결과"라고 논평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대표 재임시절 17번이나 호남을 방문했고 강재섭 대표는 취임하자마자 호남으로 달려갔다. 광주에선 허리숙여 사과도 했다. 이런 노력이 득표율 8.2%라는 결과를 만들었다는 게 한나라당의 설명이다."호남에 더욱 정성을 기울이겠다"며 겸손함을 보였지만 이번 선거결과로 호남에 대한 한나라당의 기대치는 더욱 높아졌다. 이런 기대로 한껏 부풀었던 한나라당은 다음날 '날벼락'을 맞았다. 김용갑 의원이 26일 국정감사장에서 노무현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을 비판하며 광주를 '해방구'라 표현한 것이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비난은 물론 당내에서조차 김 의원의 발언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 김 의원의 발언 뒤 한나라당의 표정엔 '한껏 자세를 낮춰 두드린 덕에 조금 열렸던 호남 문이 김 의원 말 한 마디로 다시 닫혀버렸다'는 실망감이 묻어났다. 당 지역화합특위 위원장인 정의화 의원은 27일 김 의원을 향해 "김 의원의 발언은 호남인들에게 '그럼 그렇지, 한나라당이 어디 가겠느냐'라는 얘기를 듣게 한다"며 "자중을 부탁한다. 당을 위해 절제해 주기를 빈다"고 주문했다.
그러나 당 지도부는 말을 아꼈다. 그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허탈감으로 한 마디 던질 법도 한데 "발언 내용이 상대 의원들에게 꼬투리잡히지 않도록 유념해달라. 다시 한 번 강조한다"는 김형오 원내대표의 발언을 제외하곤 당 지도부 누구도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 20일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노무현 정부의 포용정책을 차별화해 분리 대응해야 한다는 당 전략기획국의 내부 보고서가 한 일간지를 통해 공개됐다. 그간의 한나라당 호남 구애가 결국 표를 의식한 정치행위였다는 비판의 빌미를 스스로 제공한 셈이다. DJ의 햇볕정책과 노무현의 포용정책을 동일시하고 싸잡아 비판하던 한나라당이었기 때문이다.
당 관계자는 전략기획국의 내부 문건이 언론에 공개되자 "유출됐다는 게 문제지 이게 솔직한 한나라당의 마음"이라고 했다. 속이 쓰리지만 김 의원의 발언에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는 한나라당 지도부. 아직은 자신들의 호남 구애에 진정성을 자신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