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9일 북한 핵실험 이후 필자는 여러 차례에 걸쳐 북한 핵실험이 초래할 파장에 대해 다각적으로 분석하였다. 분명 북한 핵실험은 우리나라의 존망(存亡)과 우리 국민의 생사(生死)를 결정할 만큼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중차대한 상황이 초래된 데는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좌파정부가 추진해온 햇볕정책과 포용정책을 통해 제공된 대북지원이 중요한 배경이 되었던 것으로 백일하에 드러났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햇볕정책과 포용정책의 지속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북한 핵문제의 본질을 져버리고 국제사회의 흐름에 역류하는 고집에 불과하다는 것이 다수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들이 북한 핵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면 그리고 나라의 책임 있는 지도자들이라면 이와 같은 비상식적인 주장은 결코 나올 수 없으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북한 핵문제의 시작은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2년 2월 당시 남북한은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라고 하는 기본 합의서를 채택하면서 동시에 '한반도에서의 비핵화에 대한 남북 공동선언'을 발표하였다. 당시 남북한이 합의한 공동선언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실질적 조치들을 반영한 것으로서 이 조치들이 원만히 실천되었다면 북한 핵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반도 비핵화 선언은 휴지조각이 되어 버렸고 북한 핵문제가 점차 불거지게 되었다.

    한반도 핵문제에 대한 시각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미국과 국제사회가 바라보는 시각으로 한반도 핵문제는 '북한의 핵개발'에 기인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하나는 북한이 바라보는 시각으로 한반도 핵문제는 '미국의 적대적 대북정책'에 기안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북한은 한번도 '북한 핵문제'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조선반도 핵문제'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를 통해 북한은 일관되게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철회를 요구하고 미국과 북한간의 양자협상을 통해 '조선반도 핵문제'를 해결하자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처방안은 김영삼 정부를 기점으로 중요한 변화를 보였다. 노태우 정부까지는 한반도 핵문제를 '북한 핵문제'로 인식하고 대처해 왔으나, 김영삼 정부에 와서 그 틀이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하였고 김대중 정부부터 '북한 핵문제'보다는 '조선반도 핵문제'라는 입장에 접근해 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미간 갈등도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게다가 김대중, 노무현 좌파정부는 "북한은 핵무기를 실제로 사용하기 위해서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원조와 안전보장을 확보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므로 경제원조와 안전보장을 제공하면 핵개발을 중단할 것"이라는 인식하에 대북 포용정책을 지속해 왔다.

    북한이 핵실험을 단행한 이 시점에서 과연 북한은 경제원조와 안전보장을 확보하기 위한 방편으로 핵개발을 한 것인가 하는 분명한 판단이 필요하다. 세계적으로 핵무기 보유 상황이 핵무기 보유가 공식적으로 인정된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의 5개국과 비공식적으로 용인된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의 3개국(남아공은 핵무기 개발 후 스스로 폐기)으로 이루어져 있는 상황에서 1980년대부터 북한을 포함하는 몇몇 '불량국가(rouge states)'들을 중심으로 핵무기 개발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들 불량국가들은 국제사회의 규칙을 자주 위반하는 국가들로서 핵무기를 절대로 보유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공통된 인식이다. 이에 따라 북한 핵문제를 두고 북한과 국제사회가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김대중, 노무현 좌파정부는 "경제원조와 안전보장을 제공하면 북한이 핵개발을 중단할 것"이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제원조와 안전보장은 몇 가지 중요한 전제를 필요로 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경제원조는 정권에 대한 지원과 인민에 대한 지원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까지 인도적 지원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각종 지원이 대부분 정권의 손으로 흘러 들어간 것이 입증되었다. 심지어 김대중, 노무현 좌파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추진한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사업을 통해 들러간 지원도 대부분 정권의 수중으로 들어가 김정일 정권 유지와 핵개발을 포함한 북한의 군비 강화에 투입된 것이 드러났다. 결국 북한이 요구하는 경제원조는 '김정일 정권 유지'와 '군비 강화'에 필요한 자금을 요구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따라서 북한이 국제사회의 경제원조를 제공받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북한사회의 '투명성'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북한의 안전보장 문제와 관련해서도 북한은 유엔 회원국으로서 국가유지에 필요한 안전보장을 이미 제공받고 있다. 유엔은 가공(可恐)할 핵무기의 확산을 막기 위해 "핵보유국은 비핵보유국을 향해 절대로 핵을 통한 선제공격은 하지 않는다"는 5개 핵무기 보유국의 유엔총회 선언을 통해 북한에 대해 핵우산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국가 유지에 필요한 안전보장과 핵우산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유엔헌장 준수와 비핵보유가 전제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북한사회의 투명성이 제로 상태이며 북한의 미래에 대한 예측이 전혀 불가능한 상태에서는 경제원조가 제공될 수 없다. 또한 북한이 유엔헌장을 위반하고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안전보장도 제공될 수 없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경제원조와 안전보장 제공은 국가와 인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김정일 정권의 유지를 보장하기 위한 것과 다름이 없다. 이 때문에 김정일 정권은 핵무기를 포기할 수가 없는 것이며 끝까지 핵무기를 보유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경제원조와 안전보장은 김정일 정권의 유지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지속적으로 미국에게 대북 적대정책을 철회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첫째 미국과 북한간의 양자협상을 통해 김정일 정권 유지를 보장받고, 둘째 북한을 가상적으로 하는 '한미군사동맹'을 폐기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통해 달성하려는 최종목표이자 북한 핵문제의 본질인 것이다.

    이제 북한 핵실험으로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했음이 입증되었다. 그러나 핵무기 자체와 이를 실어 나를 운반수단이 조악한 상황에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핵무기와 운반수단이 더욱 발전되기 전에 북한을 최대한 압박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와 같은 노력에 대한 걸림돌은 노무현 정부와 중국이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2년 10월 2차 북핵위기가 불거진 이후 이제까지 노무현 정부와 중국이 한 일은 6자회담이 깨지지 않도록 관리한 것뿐이다.

    결과적으로 북한 핵실험은 김대중, 노무현 좌파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이 완전히 실패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좌파정부는 북한 핵문제가 갖는 국제정치학적 의미를 간과하고 북한의 핵정책을 너무 선의로 해석했다. 그 결과 북한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는데 실패했다. 그 결과가 남한은 북한의 핵무기 앞에 발가벗게 된 것이다. 핵무기는 군사적 무기인 동시에 정치적 무기인 것이다. 이에 따라 남한은 핵무기를 가진 북한과 동등하게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을 수도 없게 된 것이다.

    이제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입증된 상황에서 노무현 정부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조치는 기존의 남북관계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대북 포용정책을 폐기하는 일이다. 노무현 정부는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고 핵무기 비확산이라는 국제 규범과 한반도 비핵화의 약속을 준수하도록 분명히 요구해야 한다. 또한 핵무기를 소유한 김정일 정권과는 공존할 수 없음을 선포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나라는 국제사회로부터 정치적, 경제적으로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상황에 처하게 되어 제2의 외환위기와 같은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다. 북한 또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에 따라 체제 변환이라는 역풍을 맞게 될 것이다. 이 상황에서 더 이상의 햇볕정책과 포용정책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북한의 핵무기 앞에 벌거벗은 상황에 처한 우리나라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깨지기 작전의 한미군사동맹을 회복하고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통해 북한의 변화를 실질적으로 유도하는 것뿐이다. 그 첫 단추는 곧 있을 외교안보팀을 어떻게 개편하는가 이다. 현재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김정일 정권을 무너뜨리지 않고는 북한 핵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흐름으로 가고 있다. "김정일이 절대로 핵카드를 버리기 힘든 상황에서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북한의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 정권교체)밖에 없다"는 원로 전문가의 진단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지금 한반도는 생존이냐 공멸이냐의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