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18일자 오피니언면 '포럼'란에 홍관희 안보전략연구소장이 쓴 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우려했던 대로 한미 정상회담이 양국 간의 깊은 골을 재확인한 채, 외교적 수사(修辭)로 마무리됐다. 양국 정상은 전시 작통권 이양 원칙에 공식 합의했으며, 상세한 것은 10월 실무회담에 일임했다. 이에 따라 큰 전기가 없는 한 전작권의 한국 단독행사는 돌이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한국의 국가안보는 앞으로 끝 모를 ‘불확실성’의 망망(茫茫)대해로 던져지게 됐다.

    그동안 ‘준비가 부족해 시기상조’라던 초기 입장을 접고, ‘2009년 조기 이양’ 쪽으로 미국이 급선회한 배경도 이번 회담을 통해 드러났다. ‘연합방위체제’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지고 있는 마당에, 불필요하게 시간을 끌어 이 문제가 ‘정치화’하는 것을 막으려 했던 것이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정치화 경계’를 유독 강조한 것도 전작권 문제가 한국 내 친북 세력에 의해 ‘반미 선동의 제물’이 되는 것을 우려한 때문이다.

    한편 대북정책을 놓고 일어난 양국 갈등은 ‘공동의 포괄적 접근’이라는 모호한 추상적 슬로건으로 봉합됐다. 그러나 이 신조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청와대 안보수석조차 그 실현의 ‘지난(至難)함’을 고백했을 정도다. 한마디로 미국의 금융제재를 좀 완화시켜 북한 정권의 고통을 덜어주자는 것인데, 그 방법론에서 전문가들조차 이견이 분분하다.

    외교는 어디까지나 ‘실제’다. 도상(圖上)계획만으로 국가 중대사를 무리하게 추진해선 안된다. 현재 미국의 대북 제재 방침은 ‘7·15 유엔 결의’에 힘입어 어느 때보다 확고하며, 일본도 19일부터 대북 금융제재에 착수한다. 이에 대해 북한은 미국의 제재 철회 없이는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하고 있다. 대북 정책에 있어 한미는 ‘제 갈길’로 가는 것이 불가피해졌다. 이제 노무현 정부는 대립하는 미·북 사이에서 어느 편에 설지를 결정해야 한다. 자유민주 우방과 대북 제재 공동전선을 펼 것인가, 민족공조 아래 ‘평화체제’를 부르짖으며 남북이 함께 갈 것인가.

    정상회담 이후 집권세력은 외교 수사에 지나지 않는 미국의 ‘안보공약 불변’ 언급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 선전하면서 국민을 상대로 친북정책을 합리화하고 있다. 또 김정일 정권을 도와주는 데 미국을 끌어들이려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 노선은 결코 용인될 수 없다. 국제사회의 규범과 도덕이 그리 허술하지도 않다.

    그동안 국가안보를 걱정하는 많은 전문가, 지식인, 전·현직 공직자 등 다수의 국민이 전작권 단독행사에 반대하는 의견을 표명해왔거니와 이를 ‘냉전 논리’로 폄훼해 오던 집권세력이 정상회담 이후 오히려 정치공세를 강화하는 모습이다. 당장 집권당 지도부는 스스로를 ‘평화사랑’ 세력으로 지칭하며, 안보를 우려하는 국민에 대해 ‘수구세력의 안보선동’이라는 극언을 사용하고 나왔다. 그러나 북한 공산집단을 도와주고 각종 범죄행위를 두둔하는 정책이 과연 ‘평화’를 사랑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핵·미사일·범죄행위에 대해 국제사회는 ‘정권 차원에서 자행되는 유례없는 조직적 불법 행위’로 규정한 상태다.

    현재 국내정치에서 공공연히 전개되는 몰(沒)가치적 정치 선동도 주목된다. 특히 6·25전란과 현 한반도 위기의 책임을 미국에 전가하며, 남북 공조의 한 단계 가속화를 주장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언이 예사롭지 않다. 앞으로 좌우 이념구도의 ‘정계개편’에 대비한 영향력 쌓기 포석이란 분석도 나온다.

    석학 폴 케네디는 한반도 현실을 “코끼리(주변 열강)에 둘러싸인 개미”에 비유했다. 그만큼 우리가 처한 지정학적 환경이 어렵다는 뜻이다. 집권 좌파세력은 ‘평화’라는 이름으로 더 이상 국가위기를 외면하고 국민을 호도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