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8일자 오피니언면 '특파원 칼럼'란에 이 신문 허용범 워싱턴 특파원이 쓴 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미국 대통령 부시에게 북한은 단지 대량살상무기를 만들어 파는 나라만은 아니다. 그는 어떤 종교적 신념에 기반한 선악(善惡)의 관점으로 북한 정권과 그 지도자를 보는 듯하다.

    올해 초 어느 날. 부시 대통령이 백악관 서쪽의 비서실동을 예고 없이 방문했다. 부시는 보좌진에게 북한의 인권상황을 길게 거론하면서 북한 지도자 김정일이 주민을 굶겨 죽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의 뽀글뽀글한 헤어스타일을 빗대 “광대처럼 하고 다니는(buffoon-like) 그 사람이…”라는 표현도 썼다. 부시 대통령의 이 모습을 본 참모들은 “대통령은 북한 인권 문제에 진짜로 분노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미국인들의 가치관에서 정의(正義)란 악에 대한 분노와 대결로 받아들여지는데, 부시는 그런 가치관을 국가정책에서 구현하려는 쪽이다.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면서 이 세계를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도로 단순화해 놓고선 “우리 편이 아니면 적”이라고 공언했다. 그런 관점은 외교관계에서 많은 문제를 낳았고, 미국도 이른바 ‘실용주의’로 상당한 궤도수정을 했다. 하지만 북한의 인권문제는 여전히 부시에게 흑과 백의 문제처럼 보인다.

    이런 일화도 있다. 지난 5월 초, 탈북자 6명이 미국에 집단 입국하기 일주일쯤 전이었다. 부시는 캔자스주 상원의원 샘 브라운백과 함께 헬기를 타고 와 백악관 앞 잔디밭에 내리고 있었다. 브라운백 의원이 난관에 처한 탈북자들의 미국 입국문제를 설명하면서 대통령의 결단을 요청했다. “탈북자문제는 도덕과 윤리, 즉 옳고 그름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옳은 일이고 그렇기에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부시는 잠시 생각한 끝에 옆에 있던 마이클 처토프 국토안보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그들이 오게 하시오(Make it happen).” 미국의 안보, 한국의 입장 등 온갖 이유로 미뤄져 오던 탈북자들의 미국행은 대통령의 이 지시가 있자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당시 미 정부 관리들은 탈북자들의 미국행 허용 여부를 안보의 관점에서 분석하며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은 북한 인권 상황을 외면하는 것은 윤리적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백악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말했다.

    지금 미국에서 북한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 부시 대통령을 ‘요덕 스토리’ 공연에 초청했다. 북한 강제수용소의 참상을 그린 이 뮤지컬을 미국 대통령이 직접 보기를 바라고 있다. 이들은, 수십만 명이 강제수용소에 갇혀 있고 대량 국외탈출이 벌어지는 지구상 유일한 이 나라의 인권 상황에 한국 정부가 침묵하는 한 목소리를 높여 경고하고 개입할 나라는 실질적으로 미국뿐이라고 말한다. 미국이 침묵하면 북한의 주민들은 세계의 외면 속에 방치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이들이 부시를 초청한 이유다.

    그동안 워싱턴 국립극장 대관료 2억여 원이 없어 두 차례나 연기된 요덕스토리 공연은 이제 내달 5~8일 6차례 공연으로 최종 계획이 잡혔다. 대관료는 공연계획을 축소하는 등의 방법으로 그럭저럭 해결해 나가고 있다. 자신에게 돈 한 푼 떨어질 일 없는 이 뮤지컬을 미국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벌써 수개월째 뛰는 많은 사람들을 볼 때마다 여러 생각을 하곤 한다. 이들에게 북한의 인권상황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것일까. 정치적 계산일까, 종교적 신념일까, 윤리적 의무감일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인권이란 결국, 어떤 정치적 상황논리도 변명이 될 수 없는, 부시의 생각처럼 흑백과 선악, 정의와 불의의 문제가 아닌가 하는 쪽으로 귀착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