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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6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종호 논설위원이 쓴 시론 '괴벨스의 그림자'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나치 독일의 공보장관이었던 파울 요제프 괴벨스보다 더 천재적인 선동가는 세계 역사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다. 독일 국민을 집단최면 상태로 몰아 나치즘의 광기 속에 끌어들이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그의 궤변과 선전·선동술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죽하면 그를 토마스 만은 “신에게까지 거짓말을 하려는 지옥에서 온 입”이라고 했겠는가.
괴벨스는 히틀러가 자살한 이튿날인 1945년 5월1일 역시 권총으로 자살했으나, 그의 선전·선동 수법은 과거의 전설을 넘어 오늘의 현실로 재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정권의 궤변과 선전·선동, 이에 맞장구치는 대한민국 일각의 행태는 괴벨스의 그림자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괴벨스의 망령이 시대와 공간을 달리해 20세기 아닌 21세기, 독일 아닌 한반도에 떠돌고 있는 셈이다. 북한 정권은 궤변이나 거짓말을 그럴 듯하게 꾸며 많은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세뇌시키는 상투적 수법을 일상화하고, 대한민국에는 결과적으로 그 공작 의도에 발맞춘 인식과 행동이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되고, 그 다음에는 의심받지만, 되풀이하면 결국 모든 사람이 믿게 된다.” 괴벨스가 남긴 명언의 하나로 평가되는 이 말의 현실화가 그런 사실을 뒷받침한다. 북한 정권의 뻔한 궤변과 거짓말도 그대로 따라 외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런 사람들이 집단화·세력화·조직화하기까지 했다. 북한은 그런 현실을 확인하며 그 선동의 세뇌 효과에 스스로 놀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북한 정권에 부화뇌동하다시피 하는 세력이 지금은 대한민국의 소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다수를 차지해 모든 분야의 주류로 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북한 정권이 궤변과 거짓말을 반복, 대남 세뇌 공작을 펴온 것은 어제오늘이 아니다. 그 사례는 부지기수여서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더욱 큰 문제는 그 궤변이나 거짓말을 거의 그대로 따라 외치는 목소리가 일부 친북단체뿐만 아니라 정부에서조차 나오기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적화통일과 주한 미군 철수 주장의 이념적 표현인 ‘우리민족끼리’의 반복 강조가 대표적 사례다. ‘우리민족끼리’는 김일성 주체사상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북한 전역에 내걸린 ‘우리식 대로 살자’는 선동 구호가 확인시켜주는 것처럼 한반도에서 제국주의 미국을 몰아내고 북한식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통일하자는 주장을 민족주의로 포장한 것이다. 그런 포장이 거부감을 없애 선동 확산과 세뇌에 효과적일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동포애’ ‘민족의식’ 등의 명분에 현혹돼 그 궤변의 실체를 잊고 정당한 것으로 착각하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개방적 세계주의가 요구되는 시대에 여전히 폐쇄적 민족주의에 갇혀 북한의 선동 책략에 휘말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민족끼리’는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의 6·15 공동선언에서 강조된 이후 정부 당국자들도 스스럼없이 자주 사용하는 용어로 굳어져 왔고, 일반 시민 역시 그 선동성에 무감각해진 것이 현실이다.
북한 정권이 강조해온 ‘주체’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 ‘자주’가 강조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을 자초해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하더라도 외세를 배격하고 ‘우리끼리’ 살자는 주장과 사실상 맞닿아 있을 수 있는 ‘자주’ 이념이 국민을 세뇌시키고 있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선군(先軍)정치’ 선동도 다르지 않다. 7월12일 제19차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북측 대표단장이 “선군이 남측의 안정도 도모해주고, 남측의 광범위한 대중이 선군의 덕을 보고 있다”고 한 것은 물론 궤변이다. 그러나 그 이후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북한의 대남 선전 매체들이 ‘선군’을 선전·선동하고, 일부 노골적인 친북단체가 그 부화뇌동을 전염병처럼 확산시키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만큼 그 세뇌 공작에 넘어가 궤변으로 치부하지 않는 사람이 앞으로 많아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건강한 국가 의식을 가진 시민 모두가 괴벨스의 망령이 대한민국에 드리우고 있는 검은 그림자를 직시하고 경계와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할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