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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치학 용어 가운데 '미러 이미지(거울 이미지·mirror image)'라는 개념이 있다. 1980년대까지 이어져온 미국과 소련을 양축으로 한 냉전시기 각국의 정책을 설명하는 것으로, 정확히 정의내리기 어렵겠지만 상대방(적국)을 바라봄에 있어서 마치 거울을 보듯 자신이 보는 시각을 적용한다는 뜻이다. 극심한 갈등관계에 놓인 두 국가가 서로 유사한 경향을 띠면서도 역으로 판단, 서로 견제하는 현상을 설명한다.
즉 거울처럼 내가 오른팔을 들면 상대방은 왼팔을 든 것처럼 보이고, 상대방의 왼팔(실제는 오른팔)을 잡기 위해 왼팔을 내밀면 같은 속도로 거울속의 상대방은 오른팔(실제는 왼팔)을 내밀어 갈등이 또다른 갈등을 증폭시키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개념이다. 또 내가 가진 (나의) 이미지를 상대방에 투영시키면서, 양측이 서로 '오해'를 거듭하며 극으로 치닫는 현상을 설명하기도 한다.
1940∼50년대 소련이 원자무기 개발로 군사력 증대를 가져오자 미국은 전세계가 소련의 지배하에 들어갈 것이라는 판단하에 서둘러 군비를 증강하고, 이를 본 소련은 또 세계 각지역에 미국의 영향력이 퍼질 것을 두려워해 간섭을 늘이는 행동을 되풀이했다. 미국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결성하자 소련이 바르샤바조약으로 대응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결국 '미러 이미지'로 키워온 엄청난 군사력을 배경으로 냉전시기동안 세계대전 위협속에 전세계는 존재해왔다.
국제정치에서 사용되는 개념을 국내, 그것도 여야관계에 적용하는 것이 다소 무리겠다. 하지만 과거 국회와 달리 대화통로마저 차단된 우리의 여야관계 현실만 따져보면 '미러 이미지'가 주는 교훈을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밀실정치' '야합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갈등과 투쟁을 거듭하더라도 '단절'은 피해야한다는 말이다. 거울으로 통해 서로를 보며 극으로 치닫는다면, 결국 피해는 국민에게 고스란히 전해질 뿐이다.
상대편은 오른쪽에 있지만 실제는 자신이 왼쪽에 있는 것이고, 상대편이 왼쪽으로 간다면 실제 자신은 오른쪽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상대를 잡기위해 이쪽저쪽 움직일수록 골은 깊어간다. 중심에 있는 국민은 왼쪽, 오른쪽 정신사나울 뿐이다. 양쪽이 잡고 있는 언제 깨질 지 모를 공포균형 사이에서 위태롭게 존재하는 것이다.항상 국회가 열릴 때면, 여야는 '상생의 정치'를 강조한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그리고 있는 '미러 이미지'를 인지하지 못한다면 극한 대립속에 위험한 균형만 있을 뿐이다. 9월 정기국회가 1일 개회했다. 내년 대선을 앞둔 이번 정기국회가 정쟁으로만 얼룩지지않을까 우려가 많다. 열린우리당은 '민생제일'을 앞세웠고, 한나라당은 위기의 나라를 살리자며 '119국회'를 들고 나왔다. 둘다 취지는 좋다. 나라도 구하고 민생도 살았으면 하는 것이 국민의 기대임을 여야는 새겨야한다.
이날 오전 여당의 확대간부회의에서 열린당 민병두 의원이 내놓은 "꿈과 희망을 좇는 낙관적인 정당, 불안과 걱정의 비관적인 정당"이라는 홍보논리에 같은당 김부겸 의원이 "야당을 그런 식으로 자극해선 안되며 존재를 인정해야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 의원은 '미러 이미지'를 넘어선 셈이다.





